[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75)
“주문을 왜 안 받지?”
“그러게, 바쁜 모양인데 이 버튼을 눌러야 하나?”
옆자리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대화다. 토요일 점심이어선지 식당은 한껏 분주했다. 모든 테이블 위에는 작은 태블릿이 놓여 있고 으레 있어야 하는 종이 메뉴판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요즘 보편화해가고 있는 여타의 음식점처럼 자동주문 시스템 식당이다.
직원과 눈을 맞추고 무엇이 맛있느냐 혹은 이 집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음식은 무엇이냐 등등 소소하나마 정다운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포털에서 미리 검색한 맛집과 맛집 블로거가 추천한 메뉴를 찾고 주문용 태블릿에서 톡톡 몇 번의 터치만 하면 된다. 아! 그래도 여긴 로봇이 미끄러지듯 가져다주는 대신 직원이 서빙해준다.
![신속하고 편리하지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낯설기만한 자동주문시스템. 갤럭시탭 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5/24/fd077193-5aa0-4a41-884e-eb53c6736792.jpg)
신속하고 편리하지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낯설기만한 자동주문시스템. 갤럭시탭 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옆자리 어르신들이 머뭇거리다 '여기요~'하며 바쁜 직원을 불러 세웠다. 다소 귀찮은듯한 표정의 직원은 태블릿을 가리키며 우리 가게는 자동주문이지만 그냥 주문을 받겠다고 한다. 무슨 선심이라도 쓰는 양하는 말투다. 어르신들은 괜히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여기저기 우후죽순 생겨나는 무인판매, 키오스크, 자동판매 등등 세상은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다.
일상에 스며드는 무인가게는 편리하기만?
![최근 주택가 상가에도 무인가게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표적인 업종으론 아이스크림가게가 있다. [사진 홍미옥]](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5/24/f1e9a2d2-8fd4-49ee-8136-26f87a762cf5.jpg)
최근 주택가 상가에도 무인가게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표적인 업종으론 아이스크림가게가 있다. [사진 홍미옥]
요즘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가게 중에 부쩍 눈에 띄는 업종이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 가게다. 언제부턴가 일 년 내내 반값 세일을 하니 제값을 주고 사는 건 손해 보는 느낌이다. 어른이 되어도 가끔 생각나는 군것질은 단연코 구멍가게 냉장고에 수북이 쌓여있던 빙과류다. 새로 문을 연 가게에는 300여 종의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아니! 그렇게나 종류가 많았다니 우선 그것부터 놀랄 일이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하더라도 100m 사이에 세 곳이 영업 중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가끔은 어릴 때 먹던 시원하고 달달하던 값싼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 사이 팥으로 만든 ‘하드’, 이렇게 불리던 때가 있었다. 하드는 쫀득한 인절미와 흑임자를 품어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팔리고 있었다.
12시에 만나서 먹어보자던 아이스콘은 그새 주인이 바뀌어서 다른 상표를 달고 있다. 아가도 엄마 젖을 떼기만 하면 쭉쭉 잘도 먹는다던 빙과류까지 가게엔 추억도 달콤함도 시원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공통점은 세 곳 모두 무인으로 운영하는 가게다. 말 그대로 셀프계산, 셀프포장이다.
![누구나 쉽게 셀프계산을 할 수 있도록 설명서가 부착되어있지만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낯설기만 하다. [사진 홍미옥]](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5/24/bd93d40d-24f4-4f0b-b255-3a19e2ff3216.jpg)
누구나 쉽게 셀프계산을 할 수 있도록 설명서가 부착되어있지만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낯설기만 하다. [사진 홍미옥]
매장의 계산대 위엔 친절하게 '셀프계산 따라 하기'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이 정도면 별다른 고민 없이 간단한 편이긴 하다. 혹시라도 계산하지 않고 달아나는 이들은 없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들긴 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며 여기저기 달려있는 CCTV가 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라떼는 말이야 족'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그 편리함에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무인 스터디 카페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입구에서 스스로 체온 체크도 하고 좌석도 선택하고 결제까지, 물론 이런 광경이야 영화관이나 그 밖의 영업장에서 흔하게 접하는 모습이긴 하다. 그래도 팝콘이나 콜라를 파는 직원도 있고 매표소에도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여긴 무인 스터디 카페! 정말 사람이 없을까? 주인은 어디 있을까? 호기심에 두리번거렸으나 정말로 없다.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는걸 보니 이용자가 없는 시간을 타서 청소도 하고 비품도 채워 넣는 모양이긴 하다. 하하하 현대판 달팽이각시인가?
불편사항이나 문의 사항은 카톡이나 문자로 해결해준다고 쓰여 있다. 주 이용객이 청소년이나 젊은 층이고 보니 오히려 편리한 방식일 것 같기도 하다.
로봇이 닭도 튀기고 커피도 서빙하는 시대
미래학자 제이슨 싱커는 그의 저서 『로봇시대, 일자리의 미래』에서 눈앞에 닥친 자동화와 로봇으로 인한 일자리의 변화에 관해 얘기한다. 누구나 할 수 없던 중세시대의 대장장이가 오늘날 공장의 기계로 대체될 줄 몰랐을 것이라며 당신은 그 변화에 준비되어 있는가를 묻고 있다.
거창하게 미래학자의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변화하는 세상, 이를테면 카페의 알바는 서빙 로봇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누구는 일자리를 잃고 누구는 인건비를 절약하는 그런 경우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로 비대면의 활성화가 계속되니 최첨단이라는 이름 아래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닭 튀기는 로봇만 해도 그렇다. 로봇이 고소한 닭튀김을 한 바구니 튀겨낼 동안 통닭집 점원은 한점도 완성하지 못했다. 애당초 기계와는 겨루지 말았어야 했을까? 흥미로운 대결이었지만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로봇이랑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을 준비해야 하니 말이다. 무인가게와 키오스크 판매로 청년의 알바 자리가 줄어들었음은 뻔한 일이다. 누굴 탓하기에는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무얼 준비해야 할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제이슨 생커의 주장처럼 끊임없는 교육과 배움이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으니 난감하다. 이래저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배울 것도 준비할 것도 많은 평생 수험생 신세인 것 같다. 돋보기를 쓰고서라도 태블릿 화면을 터치해야 밥이든 햄버거든 사 먹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