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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델베르크 어느 성당에서의 카페 타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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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소비로 표현되는 시대.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 기획자·마케터·작가 등이 '민지크루'가 되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공간·서비스를 리뷰합니다. 〈편집자주〉 

컨셉트 카페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끼익-. 서울 은평구의 평범한 아파트 상가 문이 열리니 훌쩍 시공간을 뛰어넘어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작은 성당이 나타난다. 묵직한 나무 문, 기다란 예배당 의자, 곳곳에 놓인 캔들, 공간을 울림통 삼아 풍성하게 울리는 음악…. 스테인드글라스의 은은한 주홍빛이 감도는 예배당 맨 앞에서는 흰옷 입은 바리스타가 거룩하게 커피를 내린다.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YM ESPRESSO ROOM)은 성당 컨셉트의 이색 카페다. 삶이라는 여행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나는 이곳을 찾는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는 오픈형 구조가 독특하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는 오픈형 구조가 독특하다.

어떤 공간인가요.

서울 은평뉴타운 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성당 컨셉트의 카페예요. ‘와이엠 커피 프로젝트’(YM COFFEE PROJECT)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두 곳의 카페 중 하나예요. 그중 하나인 연신내의 ‘와이엠 커피 하우스’가 핸드드립 커피에 주력한다면,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은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메뉴를 맛볼 수 있어요. 촘촘한 나무 창살 안으로 기다란 예배당 의자가 보이고, 입구에는 유럽 성당처럼 초를 점화하며 기도를 올리는 공간이 있어요. 문도 성당의 묵직한 문과 똑 닮아 있습니다.
2개월 전 처음 방문하는 날엔 비가 내렸어요. 좌석마다 배치된 캔들 모양의 조명과 성가처럼 공간 가득 울려 퍼지는 음악, 비 오는 풍경이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매장에 흐르는 음악이 보이지 않는 칸막이처럼, 답답하지 않은 안정감을 주었어요. 그 뒤로 열 번 이상 방문했어요.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멍’ 때리기 딱 좋은 곳이라서요. 하던 일을 잠깐 내려놓고 싶을 때 이곳엘 가요.

세상에 카페가 참 많잖아요. 그중에서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에 꽂힌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보통 카페라는 ‘공간’을 방문할 때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가잖아요. 저 역시 카페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공부나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여기서는 그런 생각이 사라져요. 성당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차분해져요. 착 가라앉는 느낌이 아닌, 아늑함이요. 의외로 일행과의 대화에 집중하기도 좋아요.

이 공간을 한 단어로 표현하다면.

'쉼'. 하나 덧붙이면 '안정'이요. 최근엔 컨셉트가 분명한 공간이 많아졌고, 컨셉트 자체가 콘텐트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은 공간 자체보다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가장 큰 메시지예요.

밤에 본 카페 앞 풍경. 아파트 상가에 위치해 산책하는 주민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무 창살 사이를 들여다본다. [사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인스타그램]

밤에 본 카페 앞 풍경. 아파트 상가에 위치해 산책하는 주민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무 창살 사이를 들여다본다. [사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인스타그램]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다고요.

이곳을 좋아하게 된 것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떠났던 여행과 연결돼 있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도시 전체가 아름다웠는데 그날따라 너무 춥고 힘들더라고요. 혼자 떨다 성당이 보여 들어갔는데 그때 느낀 따뜻함이, 여길 처음 방문한 날 떠올랐어요. 하이델베르크 성당에서 나올 때 초를 켜며 감사 기도를 했는데, 카페 입구에 있는 초를 켤 수 있는 공간을 보니 기억이 더 또렷해지더라고요.
이곳의 조용민 대표도 유럽 여행 중에 카페의 공간 컨셉트를 생각했다고 해요. 유럽 도시들에는 크고 작은 성당이 많은데,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성당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온종일 걷은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쉼터였다고요. 여행을 계속할 힘을 주는 ‘충전소’였던 거죠. 이런 곳에 앉아 쉬면서 커피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훗날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에 담게 되었다고요. 누군가 그때 자신처럼 편히 쉬어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이곳이 당신에게 특별해졌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카페를 알게 되었어요. 예배당 의자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쐬고,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완성된 커피를 바리스타 분이 직접 가져다주시며 커피 맛을 물어봐 주세요.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이곳만의 독특한 공간 구성도 저에게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커피를 내리는 공간이 카페 맨 앞쪽에 완전히 오픈돼 있어서 손님이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뒷모습을 보는 구조예요. 바리스타에게 부담스러울 것 같았는데, 실제로 물어보니 '처음엔 그랬는데 이제는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커피를 내리는 공간을 약간 무대처럼 주목시킨 카페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무대 위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바리스타에게서는 생기가 뿜어져 나와요. 아늑한 분위기는 이직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웠고, 바리스타의 활기찬 무대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어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야지’하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만족도를 점수로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9점을 주고 싶어요. 구파발역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북한산이나 은평 한옥마을 등 가볼 만한 곳도 많아요. 마음이 지친 사람, 카페에서 멍 때리고 싶은 사람, 성당 분위기의 카페에서 잠시 여행 기분을 느끼고픈 사람, 빛을 이용한 사진을 찍고 싶은 사진 애호가, 커피 맛을 중요하게 여기는 ‘커잘알(커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공간만 예쁘고, 커피 맛이 없는 카페는 실망스럽잖아요. 이곳은 커피에 전문성을 가진 카페라 맛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요. 와이엠 커피 프로젝트에서 직접 로스팅 한 원두를 시음할 수 있는 쇼룸으로 기획돼 취향별로 원두를 선택할 수 있거든요. 가격도 4000~6000원 대로 합리적인 편이에요. 디저트도 마찬가지고요. 컨셉트도 과한 것 같지만 막상 앉아있으면 그런 느낌도 없고, 바리스타가 커피 맛을 챙기고 개인 취향에 맞게 조절해 주는 세심함에서도 전문성이 느껴져요.

 창살 모양이 무늬처럼 찍힌 어느 날 오후. 취향에 맞는 원두로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바닐라통카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이면 더 부러울 게 없다. [사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인스타그램]

창살 모양이 무늬처럼 찍힌 어느 날 오후. 취향에 맞는 원두로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바닐라통카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이면 더 부러울 게 없다. [사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인스타그램]

이 공간을 즐기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찰리 채플린의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저는 삶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종교와 상관없이 나를 돌아보기 좋은 장소예요. 회사원으로 일에 휘말려 ‘나’를 잃지 않는 연습을 하기 좋은 장소라는 점에서 제 라이프스타일과도 잘 맞닿아 있어요. 차분하게 긍정적으로 나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라 이곳에서는 어깨에 힘을 빼고 시간을 보내요.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주로 한적한 오전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무 창틀 사이로 비추는 햇살 만끽하거나, 가만히 앉아 음악을 감상해요. 아침에는 주로 현악기 위주의 클래식을, 오후나 비 오는 날엔 재즈, 저녁에는 팝을 주로 선곡한다고 합니다. 갈 때마다 생각에 빠지기도 좋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기도 좋았던 이유가 시간, 날씨, 매장 안의 손님 밀도에 따라 선곡한 음악 덕분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나무 창살 사이로 빛이 아름답게 쏟아지는 창가 자리.  [사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인스타그램]

나무 창살 사이로 빛이 아름답게 쏟아지는 창가 자리. [사진 와이엠 에스프레소 룸 인스타그램]

이곳을 만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요.

컨셉트는 확실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 성당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사운드 설계, 카페 본질에 충실한 커피 맛이 잘 어우러진 공간 같아요. 차분하지만 생기 있고, 무심한 듯 상냥하고, 개방되어 있지만 매우 사적인 느낌이랄까요. 균형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셔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

YM ESPRESSO ROOM
위치 서울 은평구 진관3로 42-9 래미안 909도 1층 101호
영업시간 09:00~22:00(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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