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셋 코리아

아마추어 작가 경시하는 미술계 풍토

중앙일보

입력 2021.05.24 00:28

업데이트 2021.05.2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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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성낙 전 현대미술관회 회장·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전 현대미술관회 회장·가천대 명예총장

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명 인사들의 작품 활동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갈등의 중심에는 미술대학 출신 전업 미술인이 주도하는 미술 시장에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들이 진출하는 현상이 있다. 그 저변에 아카데미즘과 아마추어리즘 간 영역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

미대 졸업은 작가 평가 기준 안 돼
작품의 최종 평가는 애호가의 몫

오래전부터 있어온 이 문제는 그동안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취미 미술가’의 작품이 미술 애호가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그들의 작품이 화랑가에서 상당한 고가에 유통되면서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번 논쟁은 홍대 이작가로 알려진 작가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배우이자 작곡가·제작자로 활동 중인 구혜선 씨의 작품을 홍대 앞 취미 미술 학원생 수준이라고 혹평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 걸맞은 근거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홍대 이작가의 혹평이 작품에 대한 평론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점에 필자는 주목한다. 전형적인 아카데미즘의 시각을 본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문득 세계 미술계의 거목 백남준 선생이 생각난다. 선생은 미술대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미술인이다. 굳이 말한다면 일본 도쿄대에서 음악과 관련된 미학을 전공했을 뿐이다.

그런 사례는 미술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앙리 루소, 폴 고갱 등도 정식 미술대학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다. 그런데도 파블로 피카소는 가장 본받을 만한 선배 화가로 앙리 루소를 꼽으며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이 홍대 이작가라는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다른 화가의 작품을 평했다는 사실에 거리감을 느낀다.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수동적 위치에 있다. 물론 작가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논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평론가처럼 공공 매체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은 도를 넘어서는 행위이다. 자칫 자기 영역 보호 본능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어떤 작품이든 그에 대한 평가는 미술 애호가의 선택 사항이다. 선택 그 자체가 엄중한 평가 행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국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한 조앤 미첼의 작품을 좋아해 거실에 두고 감상하길 즐긴다. 필자가 아끼는 소장 작품 중 ‘조각보’도 있다. 명문대에서 도시계획학 교수를 지낸 친지가 어느 날 나이 든 모친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조각보에 관심을 가져보시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연로한 모친은 그렇게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는 그 작품에서 노인이 잔잔하게 읊는 시와도 같은 따듯함이 배어 나와 너무도 좋아한다.

또 필자가 죽마고우로부터 받은 유화 작품 한 점은 늘 감동을 준다. 초등학교 시절 그의 뛰어난 스케치 능력에 감탄하곤 했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그 벗은 미술 분야가 아니라 국내 조경학의 거두로 활약한 공학도였다. 특기할 것은 그 벗이 현직 교수로 있을 때나 정년 이후에도 꾸준히 스케치 여행을 하며 그림 그리기를 해온 취미 화가였다는 점이다. 70년 넘게 그의 필력을 곁에서 지켜본 필자는 그 같은 아마추어 작가를 감당할 전업 작가가 과연 얼마나 있을지 묻게 된다.

그래서 아마추어 작가의 그림 그리기 실력을 학계의 족보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특히 아카데미즘과 아마추어리즘 간의 영역 싸움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 작품에 매료된 애호가의 몫이고, 작품을 수집·수장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성낙 전 현대미술관회 회장·가천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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