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미국 모더나와 손잡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3분기부터 대량생산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구축하기로 한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의 일환이다. 다만 이 물량 중 얼마나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바, 원료 병입…기술이전엔 한계 #정부 “생산분 국내 공급 추후 협의” #AZ·노바백스 등 이어 모더나까지 #모든 방식 백신 국내생산 길 열어 #국내 공급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회담 전 시사 ‘백신 스와프’ 무산
삼바는 “모더나와 위탁생산 계약을 지난 22일 체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코로나19 백신을 국내에서 위탁생산하는 건 아스트라제네카(AZ), 노바백스, 스푸트니크V에 이어 네 번째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삼바가) 3분기부터 모더나 백신 수억 회분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삼바가 생산한 백신은 미국 이외 국가들에 공급될 예정이다. 후안 안드레스 모더나 최고기술운영·품질책임자(CTO·CQO)는 “삼바와 파트너십 체결이 미국 이외 지역에서 모더나의 백신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신 위탁생산은 크게 원료의약품(DS) 생산과 이를 공급받아 병에 담고 라벨을 붙여 뚜껑을 씌우는 완제의약품(DP) 생산 공정으로 나뉜다. 이번에 삼바가 맡게 된 것은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은 완제의약품 공정이다. 모더나의 완제의약품 공정을 하는 곳은 카탈란트(미국), 로비(스페인), 레시팜(스웨덴) 등 여러 곳이 있다. 그렇다고 단순 병입 수준의 쉬운 일은 아니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균 시설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갖춰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 4종 ‘아시아 허브’ 부상 … 물량 확보는 55만명분 그쳐
![스테판 반셀 모더나 CEO(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백신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5/24/239d227a-235f-4091-9e1f-9893488d9ed3.jpg)
스테판 반셀 모더나 CEO(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백신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위탁생산 과정에서 기술이전이 조금씩 이뤄지고 장기적으로 국산 백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과거 제조업이 OEM(위탁제조)을 하다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을 생산하게 됐듯, 상당한 과학기술 격차가 있는 백신 분야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에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특허가 300여 건 이상 엮여 있기 때문에 모더나가 기술 이전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모더나는 현재 스위스 제약사 론자에만 원료의약품 생산 기술이전을 완료한 상태다.

국내 위탁생산 코로나19 백신 현황
한국이 아시아 백신 허브로 부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모더나의 메신저 리보핵산 백신(mRNA)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돼, 현재 시판 중인 모든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국내 생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바이러스벡터 방식(아스트라제네카)과 유전자재조합 방식(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생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시아 백신 생산의 허브는 인도다. 세계 백신의 약 60%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인도 정부가 백신 수출을 제한하면서 세계 백신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삼바와 모더나의 협력은 전 세계적 백신 공급 부족을 해소하고 인류의 일상 회복을 앞당겨줄 것”이라고 했다.
삼바와 모더나의 계약 외에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3건의 MOU가 체결됐다. 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와 모더나는 국내 투자와 정부 지원 등 비즈니스 협력을 논의하기로 했다. 복지부·SK바이오사이언스·노바백스는 백신 개발과 생산에 대해, 국립보건연구원과 모더나는 mRNA 백신 관련 연구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이 물량 결정권을 쥔 게 아닌 만큼 당장의 국내 수급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라이선스인(License-in) 계약이 아니어서 생산 물량과 공급과 관련해선 전적으로 모더나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미 백신 협력 주요 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상회담을 통한 백신 물량 추가 확보 노력도 큰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회담 이전 정부는 미국의 백신 여유분을 한국이 조기 공급받고 나중에 갚는 방식의 ‘백신 스와프’를 거론하는 등 8000만 회분인 미국의 해외 배포 예정 백신 중 상당 물량의 확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앞서 지난 21일(현지시간) “한국군 장병 55만 명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이 전부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만 특별히 지원한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는 게 미국 측 설명이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정략적 차원에서 물량 추가 확보 가능성을 과장해 헛된 기대감만 부풀렸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스와프를 통해 11월 목표의 집단면역 달성을 조금이라도 당겨보자는 게 시급한 과제였는데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사정들을 고려해 삼바가 위탁생산키로 한 물량도 국내에 공급될 수 있도록 추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앞서 모더나와 직계약한 물량은 별개다.
강도태 차관은 “국내에 들어오는 모더나 백신은 위탁생산 시기와 상관없이 계약된 일정에 따라 도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수연·문희철·이우림 기자 ppangsh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