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급선회, 미국의 대중견제 호응…외교 새 국면”

중앙일보

입력 2021.05.24 00:02

업데이트 2021.05.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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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반도평화만들기 긴급 좌담회 - 전문가 4인이 본 한·미 정상회담 

지난 22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평가 좌담회. 왼쪽부터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교수,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류제승 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장진영 기자

지난 22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평가 좌담회. 왼쪽부터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교수,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류제승 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장진영 기자

한국 외교가 방향을 틀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쿼드(Quad), 대만, 신기술 협력 등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에 ‘전략적 급선회’로 보일 정도로 호응했다. 지난 3월 한·미 외교·국방(2+2)장관 회담 공동성명,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보아오 포럼 영상 메시지 등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과는 상당 부분 다른 방향이다. 역설적이게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중국, 한국이 미국편 섰다 여길 듯
앞으로 1년간 어떻게 나올지 관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장
바이든, 한국기업 투자 유치 노력
국내기업도 미국 신기술 협력 기회

류제승 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북한, 몸값 높이려 도발 가능성
1순위는 SLBM 시험발사 유력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교수
미국, 국군 55만명분 백신 제공
한·미 훈련 미루지 않겠다는 의중

전직 외교·안보·통상 당국자들은 지난 22일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긴급 좌담회에서 이 같은 방향 선회를 임기 5년 차인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모멘텀 확보 및 미국과의 백신 협력의 필요성이 작용한 것으로 봤다. 이들은 바이든 정부와의 첫 정상회담에서 안보와 신기술, 기후 등 다방면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한 것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향후 이행 의지 및 중국의 반발 등을 우려했다.

좌담회에는 박태호(전 통상교섭본부장)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류제승(전 국방부 정책실장)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김성한(전 외교부 차관)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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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위성락=공동발표문을 보면 한·미 동맹 역사에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고 할 만한 내용이 담겼지만 동시에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정부가 취해 왔던 입장에서 너무 많이 점프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가치에 기반한 동맹 강화, 인권, 국제 질서와 규칙에 기반한 항행 질서, 심지어 대만 문제까지 문재인 정부가 지난 4년간 잘 안 하려던 말들이 다 들어갔다. 쿼드 참여 얘기는 없지만 관련 내용을 보면 앞으로 한국이 쿼드에 참여 못 한다고 할 근거가 없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 대통령을 워싱턴에 초청해 한국을 견인하려고 했던 거의 모든 것을 관철했다.

◆김성한=지난 3월 한·미 2+2 회담 당시와 비교할 때 불과 두 달 사이에 분위기가 너무 바뀌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굉장히 궁금한데 제가 볼 때는 북한과 백신이다.

◆박태호=미국의 의도가 많이 담겼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협력을 강화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측면이 있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도 미국과 협력할 기회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문제

◆위성락=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미국적 접근을 수용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반영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몇 가지 눈에 띄는 게 있다. 남북 및 북·미 간 기존 합의에 기초해 외교와 협상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 성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한다 등이다.

우리가 얻어낸 결과물은 북한이 긍정적으로 반응했을 때만 가치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지지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연장해서 남북관계 진전을 촉진해 북·미 대화와 선순환을 이루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이건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거라는 예고다.

◆김성한=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담긴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대화 이 네 단어를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제가 미국의 전략을 짐작하면 일단 한·미 간에 대북정책을 놓고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고, 북한이 정상회담 문구를 가지고 도발하지 않게 관리하고 싶고, 내년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때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차원에서 이번 합의가 이뤄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류제승=공동발표문에 반영은 안 됐지만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 부분에 대한 논의도 정상 간에 있었을 거라고 본다.

◆위성락=우리는 제재 완화 얘기를 했을 것 같지만 미국은 피했을 거다. 문제는 공동성명에 나온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에 기초하여’라는 표현인데 ‘기초하여’라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의미가 있으려면 ‘준수한다’는 취지가 들어 있어야 했다.

◆김성한=청와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대북 제재 완화를 시사하는 단어가 들어갔으면 완벽한데 그게 빠져서 좀 섭섭하지 않을까 싶다.

◆류제승=향후 북한의 반응을 예상하면 일단 호응은 할 것 같다. 작년 ‘제2의 고난의 행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북한 내부 사정이 안 좋지 않은가. 그러나 핵 포기를 안 하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라면 바이든 정부 뜻대로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대화 재개 전후해 몸값을 높이기 위해 도발이 있을 텐데 1순위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다.

◆위성락=정상회담이 끝난 만큼 정부는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호응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국 역시 지금보다 추가로 대화에 적극적일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도 작다.

아마도 북한은 도발 카드를 생각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국은 추가 제재 등 미국식 대응을 할 거다. 그럴 경우 이번 정상회담 결과와는 전혀 맞지 않는(awkward) 국면이 될 것 같다.

◆김성한=바이든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을 많이 다뤄봤기 때문에 북한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문제 해결 기미가 안 보이면 본인의 자존심을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확대해 풀려는 경향이 있다. 도발 가능성이 있다.

안타까운 점은 정부가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북 도발 시 생길 수 있는 안보 취약성을 선제적으로 보강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1년 남은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닌가.

◆류제승=지금도 늦었지만 한·미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강압하는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다. 북핵 위협이 증대된 상황에서 한국의 안전을 지키고 북한의 핵 폐기를 강압하는 이중효과를 거두려면 미국은 ‘핵 억제 및 핵 보장’ 강화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한·미 또는 한·미·일과 호주가 참여하는 아시아판 핵기획그룹을 설립해 핵 위기 관리, 전술핵 재배치 등에 관한 협의에 착수해야 한다.

#미·중 갈등

◆박태호=이번에 미국은 한국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한국에 쿼드 참여는 얘기하지 않고 대신 백신, 기후변화, 신기술 워킹그룹과 관련해 얘기했고 우리는 거의 긍정적인 대답을 한 것 같다. 앞으로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참여하는지가 큰 과제다.

◆위성락=이번 회담으로 가장 영향을 받을 나라는 북한보다 중국이다. 중국은 한국이 지난 20~30년을 점프해서 미국 쪽으로 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민주주의 등 가치, 남중국해 자유 항행, 반도체·배터리 대규모 투자, 무엇보다 대만해협 언급 등 한국이 미국으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공동성명에 WHO 개혁을 거론하는 부분에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조사도 들어가 있다. 특히, 미사일 사거리 철폐도 이제 한국이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할 소지가 꽤 있다.

지난 4월 정 장관이 한·미 2+2 회담 직후 중국 왕이 부장을 만났는데 그때 한 얘기랑 이번 회담 결과가 양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부터 1년 사이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빅 퀘스천(Big Question)이다.

◆류제승=한·미 동맹의 역사는 한국 방위를 위한 한국군의 역할, 임무, 능력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사일 합의는 의미가 크다. 사거리를 800㎞로 한정했을 때는 북한에 대해 억제적 위협이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미사일을 갖게 되면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을 거부할 수 있는 억제력을 갖게 된다.

◆김성한=보수 정부에서 나온 공동성명과 비교해도 한·미 동맹 측면에서 상당히 진일보했다. 문제는 4월 한·중 외교장관회담, 보아오 포럼 대통령 축사 톤과 180도 다르다는 것이다. 후폭풍이 예상된다.

#백신·신기술 협력

◆박태호=우리 군 55만 명에게 백신을 무상으로 지원키로 했는데 그 이상의 우리가 바랐던 백신 스와프는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싶다. 한·미가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이슈에 함께 기여하자는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에 합의한 것은 잘된 것이다.

◆김성한=사실 국민의 기대는 북한 문제보다 백신에 있었다. 그런데 당장 확보한 건 우리 장병들 55만 명분 외에는 없다. 미국의 메시지는 한·미 연합훈련을 코로나19를 핑계로 더는 미루기 힘들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 및 MOU 체결 등 한·미 간 백신 공조는 국내 공급과는 별개이므로 백신 스와프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보기엔 미진하다.

◆위성락=정부가 이번 방미의 목적으로 백신을 얘기한 건 타깃 설정이 잘못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기자회견 톤을 보면 우리의 요구에 미국은 협업해 전 세계 코로나 퇴치에 공동 기여하자고 나왔고,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부가 애초 한국에 대한 백신 공급을 제1 타깃을 정해 자업자득한 측면이 있다.

◆박태호=기업 입장에서 미국 투자 결정은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미국 시장이 워낙 큰 데다 최고의 기술을 가진 국가가 다양한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기업은 미국이 걱정하는 기술 유출 문제에 대해 신뢰를 주되, 걱정 안 하는 기술로 만든 상품은 자유롭게 글로벌 경영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일본도, 미국 기업도 그런 식으로 중국에서 장사하고 있다.

◆김성한=반도체는 지난 4월 백악관 회의에서 삼성, SK가 중국에 공장이 있는데 시스템 반도체와 범용 반도체 중 시스템 반도체는 미국과 협력하는 거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제일 중요한 건 5G·6G ICT 분야인데 이 분야에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것인지, 미국 측으로 들어가기로 결단을 내렸는지가 이번 회담에선 불투명하다.

◆박태호=미국의 의도는 화웨이가 장악한 5G를 건너뛰고 6G로 가고, 거기에 필요한 반도체를 중국이 공급받지 못 하게 하자는 거다. 정부는 그동안 지침을 안 주고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신기술 분야에선 업계와 정부가 모여 비전을 세우고 재정을 지원하고, 법적 지원을 위해 국회까지 동참해야 한다.

정리=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cha.sehyeon@joongang.co.kr

※ 배지현 인턴기자가 정리를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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