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진단·치료 분담해 동시 진행, 심장 질환 '골든타임'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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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지난달 24일 오후 10시40분. 평소처럼 주말을 보내던 조모(53)씨에게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막혀 몸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흔한 만성질환 하나 없어 건강을 자신한 게 화근이었을까. 뒤늦게 119에 신고한 그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이 멎으면서 결국 의식을 잃었다.

특성화 센터 탐방-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의료진에게 응급 상황 일괄 전달
검사부터 시술까지 신속·정확히
경기 남부 ‘디지털 병원’ 자리매김

 119 구급대는 조씨에게 심장 충격(제세동기)을 시행하며 가까운 용인세브란병원으로 내달렸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긴급한 상황.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심전도 검사로 조씨의 상태를 파악한 후 3분 만에 심장혈관센터 의료진 전체에 ‘응급 콜’을 보냈다. 응급실에서 기본 검사와 약물 처방이 이뤄지는 동안 3층 인터벤션실에 모인 센터 의료진들은 서둘러 관상동맥 조영술과 심혈관 시술(풍선 확장술·스텐트 삽입술)을 준비했다. 병원 도착부터 막힌 혈관을 뚫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1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조씨는 4일 만에 뇌 손상 없이 두 발로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조덕규(왼쪽)·노지웅 교수가 X선·광간섭단층촬영 등 첨단 장비로 구현한 환자의 심장 혈관을 살펴보며 치료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김동하 객원기자

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조덕규(왼쪽)·노지웅 교수가 X선·광간섭단층촬영 등 첨단 장비로 구현한 환자의 심장 혈관을 살펴보며 치료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김동하 객원기자

급성 심근경색 환자 31분 만에 살려

급성 심근경색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심장과 연결된 혈관(관상동맥)이 막히면 뇌·신장 등 각종 장기가 동시에 기능을 잃는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쇼크 상태에 빠진다. 서둘러 혈관을 뚫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치료 후에도 뇌 손상이란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단순히 ‘조기 발견’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병원에 인력·장비가 갖춰지지 않으면 고난도 심장 시술이 어려워 환자가 와도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용인시는 인구 110만의 대도시지만 내로라할 대형 종합병원이 전무했다. 분초를 다투는 심장 질환 환자들마저 치료를 위해 수원·분당 등 주변의 대학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지난해 3월 개원한 용인세브란스병원이 ‘3대 특성화 센터’ 중 하나로 심장혈관센터를 설치·육성하게 된 배경이다. 조덕규(심장내과) 센터장은 “급성 심장 질환에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용인 지역의 유일한 대학병원으로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자 사명”이라며 “전체 진료과가 합심한 결과, 1년 만에 전국적인 수준의 진단·치료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씨에게 적용한 ‘FIRST-AMI’ 시스템이다.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오가는 급성 심근경색 환자는 빠른 진단과 신속한 처치가 필수적이다. 이런 진단·치료를 각각 응급의학과·심장혈관센터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FIRST-AMI’ 시스템의 핵심이다. 응급의학과에서 진단 후 ‘FIRST-AMI’ 버튼을 누르면 초기 검사·약물 처방이 이뤄지는 동시에 센터 소속 의사·간호사·방사선사 모두에게 해당 내용이 문자로 자동 전달된다. 응급실에서 초기 처치가 이뤄지는 동안 센터에 모인 의료진은 응급 시술에 필요한 약물·장비를 준비하며 치료까지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한다.

 작은 변화지만 차이는 뚜렷하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가 심혈관 시술을 받기까지 시간(Door to Balloon Time)은 평균 45분으로 미국·유럽 심장학회 기준(90분)보다 두 배나 빠르다. 노지웅(심장내과) 교수는 “신속한 치료를 위해 센터 의료진 모두가 20분 내 병원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상주한다”며 “의료진 간 신뢰와 환자를 위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환자 안전 위한 최소침습 치료에 집중

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는 관상동맥 조영술과 스텐트 삽입술의 60% 이상에서 최소침습 치료를 적용하고 있다. 가슴을 가르는 대신 혈관에 조영제를 투여한 뒤 가느다란 카테터를 삽입해 막힌 혈관을 뚫거나 불규칙한 심장 리듬을 바로잡는다. 최근에는 허벅지(대퇴동맥)·손목(요골동맥)을 이용하던 데서 한 단계 나아가 손등 혈관을 통한 ‘스너프 박스’ 접근법을 활발히 적용하고 있다. 김용철(심장내과) 교수는 “혈관이 가늘어서 치료 과정이 까다롭지만 과다 출혈과 장기 입원에 따른 합병증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최동훈(심장내과) 병원장은 세계적인 심혈관 시술 학회인 ‘앙코르 서울 2020’에서 복부 대동맥류 치료를 위한 스텐트 삽입술(EVAR 시술)을 공개 시연하기도 했다.

 병원을 신축하며 도입한 첨단 의료기기는 최소침습 치료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심장 혈관을 3차원으로 구현하는 광간섭단층촬영(OCT) 장비와 해상도를 높인 X선 등으로 진단의 정확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치료 성공률을 끌어올린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장비들이다. 조 센터장은 “정기적으로 심장내과·흉부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 심장 질환을 담당하는 의료진이 모여 최신 지견을 공유하고 환자 케이스를 검토해 최적의 진단·치료법을 찾는다”며 “의료진의 노하우와 첨단 기술을 겸비한 ‘디지털 심장 센터’로 심장 질환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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