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그 나무도 죽었다, 500살 넘은 고목들 수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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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품송은 가지 또 부러져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의 곁가지가 최근 꺾이고, 영화에 등장하던 보호수는 말라 죽었다. 충북 보은에서 보호수가 잇따라 수난을 당하고 있다.

말라죽기 전의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 느티나무. 지난 4월 27일 고사했다. 연합뉴스

말라죽기 전의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 느티나무. 지난 4월 27일 고사했다. 연합뉴스

23일 보은군에 따르면 지난 3일 수령이 600년 이상 된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의 곁가지가 초속 5∼7m의 바람을 견디지 못한 채 부러졌다.

비가 자주 내리고 바람까지 세게 불다 보니 가지가 무거워진 상황에서 부러진 것 같다는 게 보은군의 설명이다. 정이품송이 있는 자리에는 평소에도 ‘골바람’이나 돌풍이 자주 분다고 한다. 골바람은 낮에 산등성이가 빨리 가열되면서 골짜기를 따라 산등성이로 불어 올라가는 바람을 말한다. 보은군 관계자는 “정이품송이 위치한 속리산 입구에서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는 골바람이 유독 많이 불고 있다”며 “요새 비가 자주 내리고 바람까지 세게 불다 보니 가지가 무거워진 상황에서 부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보은군은 떨어져 나간 가지를 소각 처리하고, 부러진 부분은 병균이 침투하지 않도록 환부 처리로 마무리했다.

수령이 600년 이상인 정이품송은 현재 높이가 15m에 달한다. 조선 7대 임금인 세조(1417∼1468)의 속리산 행차 때 어가(御駕) 행렬이 무사히 통과하도록 가지를 스스로 들어 올려 ‘정이품’ 벼슬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원추형의 자태를 뽐내던 정이품송은 1980년대 중부지방을 강타한 솔잎혹파리로 피해를 본 적이 있다. 이후 10년 가까이 방충망을 뒤집어쓰고 투병하다 회복했지만, 수세가 약화한 탓에 태풍·폭설 때마다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을 당했다.

지난 3일 강풍에 가지가 또 부러진 정이품송. 연합뉴스

지난 3일 강풍에 가지가 또 부러진 정이품송. 연합뉴스

사진작가에게 사랑받던 느티나무 고사 

이와 함께 지난달 27일에는 느티나무 보호수인 마로면 원정리의 '보은-6호'가 지정 해제됐다. 이 나무도 수령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목이다. 이 나무는 황금 들판과 어우러진 멋진 풍경 덕분에 전국 사진작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드라마 『로드 넘버원』, 영화 『달콤한 인생』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봄부터 시들시들해지더니 올해 봄에 결국 싹을 틔우지 못하고 고사했다. 2005년 개봉한 『달콤한 인생』은 이병헌이 주연한 한국의 대표 누아르 영화다.

보은군과 원정리 마을 주민들은 고사한 느티나무를 없애고 그 자리에 수령 10년 정도 된 느티나무를 옮겨 심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은군에는 수백 년 된 명품 나무가 많다. 정이품송 말고도 '정부인 소나무'로 불리는 서원리 소나무(제352호), 속리산 망개나무(제207호), 용곡리 고욤나무(제518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보은에는 보호수만 71그루 

원래는 1그루 더 많은 5그루였지만, 보은읍 어암리 백송(전 제104호)이 말라죽으면서 2005년 8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다. 속리산 법주사 뒷산 기슭에서 발견돼 화제를 모았던 황금소나무도 '추억 속의 나무'가 됐다. 이 나무는 발견 직후인 2003년 보호수로 지정됐으나 2004년 봄 폭설에 황금빛 가지 3개가 모두 부러진 뒤 회생하지 못했다. 보은군은 2009년 보호수 지정을 해제했다.

이 지역 명품 나무 상당수는 수 백 년 된 고목이어서 태풍이나 폭설 등에 부러지거나 상처 입는 수난이 되풀이되고 있다.

말라죽은 어암리 백송.연합뉴스

말라죽은 어암리 백송.연합뉴스

보은군 보호수는 지정·해제 과정을 거치면서 한때 84그루에서 지금은 71그루로 줄었다. 느티나무가 대부분이고 은행나무·팽나무 등도 있다. 500년 이상 된 나무는 9그루가 있다. 보은군 관계자는 "보호수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2000여만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은=김방현·최종권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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