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신기자 당혹케한 文질문 "우리 여기자는 왜 손 안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리 여성 기자들은 왜 손 들지 않습니까?"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서 #미국 측서 여기자 2명이 질문하자 #文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 없나요" #미 트위터 사용자 "이상하게 보였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장. 연단에 선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에서 온 기자단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질문할 기자를 호명할 차례였다. 6초가량 정적이 흘렀다.

문 대통령은 다시 물었다.

"아니,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들이 없나요?"

다시 16초가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나란히 기자회견을 했다.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나란히 기자회견을 했다. [AP=연합뉴스]

나란히 연단에 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황스러운 듯 손으로 코를 만지고, 입 주변을 훑었다.

몸을 아예 한국 기자단 쪽으로 돌리고 서서 연설대에 왼팔을 얹고 비스듬히 기댄 채 오른손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맨 앞줄에 앉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둘째 줄에 앉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 한미 최고위 관료들도 한국 기자단 쪽으로 고개를 돌려 흘끔흘끔 쳐다봤다.

결국 한 여성 기자가 마이크를 잡게 된 건 직전 질문이 끝난 뒤 30초가량 흐른 뒤였다.

이날 회견을 지켜본 미국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

AFP통신 소속 의회 출입 마이클 매티스 기자는 트위터에 "'한국에서 온 여성 기자는 없나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으려고 여성 기자를 찾았(고 얻었)다"고 적었다.

미 CBS 뉴스 소속 백악관 출입 캐서린 왓슨 기자는 트위터에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여성 기자 없나요?' 문(대통령)이 여기자를 지목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모습으로 농담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 트윗에 다른 사용자들은 "그는 그 직전까지는 너무 잘했는데(He was doing so good up to that point)", "이상하게 보였다(seemed odd)"는 댓글을 달았다.

문 대통령 말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미국에서는 공개 석상에서 특정 성별을 언급하는 게 매우 낯설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성을 우대하는 것도 대놓고 하면 성차별주의(sexism)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청와대도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여러 정황상 추측은 가능하다.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기자회견에서 각 정상이 자국 기자 2명씩 질문권을 주는 게 관행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ABC뉴스 메리 앨리스 팍스 기자와 CBS 뉴스 낸시 코즈 기자를 호명했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다.

첫 질문권을 남성 기자에게 준 문 대통령은 미국에서 여기자 두 명이 질문하자 한국에서 온 여성 기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자단 12명 가운데 여성은 3명이었다. 통상적으로 백악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들은 여성이 약간 더 많거나 적어도 절반쯤 된다.

현장이 혼란해진 이유는 미국과 한국이 기자로부터 질문받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적어도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는 질문할 기자 2명을 미리 정한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첫 질문자를 지명할 때 들고 온 문서를 보면서 "첫 번째 질문은 ABC뉴스의 메리 앨리스 팍스라고 한다(I'm told)"고 말했다.

한국은 미리 정하지 않고 현장에서 손을 들어 결정하다 보니 문 대통령이 두 번째 질문 기회를 여성에게 주는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나온 문 대통령 발언은 자칫하면 한국 여성, 특히 한국 여성 기자들은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소극적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기자회견을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심어줄 위험이 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이렇게 썼다.

"바이든과 문재인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바이든은 질문할 기자 이름을 불렀다. 문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기자를 묘사했다. 문은 여성 기자를 원했다. 여성들은 손을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 측 첫 질문자를 지목할 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앞쪽에…왼쪽에서 두 번째"라고 말했다. 서양권에서는 손으로 가리키는 것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좀 더 성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