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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새 장 열었다"던 공동성명, 사실 곳곳이 지뢰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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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워싱턴 한ㆍ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서에서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대에 발맞춰나가겠다는 결의를 함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에 대해선 “양국 간 파트너십의 새로운 장”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한ㆍ미 정상이 ‘새로운 장’이라고 명명한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엔  향후 대북정책과 동아시아 정책에서 휘발성이 강한 '지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기자회견에 없었던 인권문제

한ㆍ미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인권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민주당의 핵심 어젠다로, 중국과 북한은 미국 정부가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해왔다.

하지만 기자회견엔 등장하지 않았던 인권 문제가 공동성명서엔 적시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공동성명서엔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하는 데 동의한다”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촉진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병기돼 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다른 접근법이 병렬적으로 반영된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인권개선에, 한국은 인도적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성명엔 “한국과 미국은 국내외에서 민주적 규범, 인권과 법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지역에 대한 비전을 공유한다”는 대목도 있다.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 문제를 우회적으로 거론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대만은 넣고, 홍콩ㆍ신장은 빼고

외교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논의된 점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많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존 S. 매케인함이 항행의 작전 수행하고 있다. [미 해군]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존 S. 매케인함이 항행의 작전 수행하고 있다. [미 해군]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남중국해의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게 한다면 대만과 남중국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 기자는 즉각 문 대통령에게 “바이든 대통령의 압박이 있었느냐”고 질문이 나왔고,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행운을 빕니다(Good luck)”라고 했다. 대만 문제가 한국에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었다는 뜻이다.

성명서에도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ㆍ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한ㆍ미 공동성명에 대만이 명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달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미ㆍ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서에 담긴 "양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양안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표현과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홍콩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라는 표현은 이번 성명에는 빠졌다. 중국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일본의 권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 전자판은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대만 관련 내용이 포함됐음에 주목하며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했다'고 말하며 양국이 이 문제에 협력해 나갈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중국의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성명서에 대만을 언급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협박에 독약을 마시는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낸 바 있어 중국의 태도가 주목된다.

베이징 겨냥하는 미사일과 쿼드

문 대통령은 공동 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지침 종료사실을 전한다”고 말했다. 42년간의 숙원을 해결한 중대한 성과다. 그런데 성명서엔 미사일 지침과 관련해 “한국은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개정 미사일지침 종료를 발표하고, 양 정상은 이러한 결정을 인정했다”는 단 한줄의 표현만 들어가 있다.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는 800km로 제한돼 있다. 미사일지침이 없어지면 950km 떨어진 중국의 베이징(北京)이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중국이 반발하는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4개국 협의체)와 관련해선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대한 각자의 접근법에 기반을 둔다”며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구상을 연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했다.

당장 쿼드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향후 여지를 남겨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표현은 CD, 실제는 CVID

양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과 북한의 핵ㆍ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다뤄나가고자 하는 양측의 의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 ‘완전하게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ㆍ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이중 북한은 ’검증가능‘과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표현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VI‘가 제외된 것은 북한에 대한 배려 차원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 아래)이 이동식발사대(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화성-15형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 아래)이 이동식발사대(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화성-15형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신문

그런데 성명서에는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는 표현이 별도로 들어가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속 비핵화 관련 표현은 'CVID'다.

이와 관련 성명서에는 “우리는 또한 우리의 대북 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한ㆍ미가 가지고 있는 대북 접근법에 이견이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표현으로 비쳐질 수 있다.

성명엔 "한·미·일 3국 협력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지만, 위안부나 징용 판결 문제로 으르렁대는 한·일 관계의 현실에선 이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주요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주요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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