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이혼 전 작성한 재산분할포기각서, 무효라네요

중앙일보

입력 2021.05.22 13:00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23)

A(남)와 B(여)는 2001년 혼인하고 함께 살다가 2013년 9월경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B는 A의 요구에 따라 ‘합의서’라는 제목으로 “A와 B는 서로가 이혼하기로 합의했습니다. B는 위자료를 포기합니다. B는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습니다”는 내용의 문서를 A에게 써 주었다. 한 달여 후인 2013년 10월 둘은 협의상 이혼을 했다. 그런데 그 후 B는 A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변호사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다. B는 A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재산분할을 요구했고 A는 B가 독립할 자금이 필요하면 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B는 A를 상대로 가정법원에 6억 7000만 원 상당의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그러자 A는 B가 협의상 이혼할 것을 전제로 재산분할을 포기하기로 합의했고, 그에 따라 실제로 협의상 이혼까지 마쳤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B는 A로부터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부부가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이혼 방법은 두가지다. 협의상 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사진 unsplash]

부부가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이혼 방법은 두가지다. 협의상 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사진 unsplash]

협의상 이혼 vs 재판상 이혼  

부부가 어떠한 사유로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이혼 방법은 두 가지다. ‘협의상 이혼’은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는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객관적인 이혼사유가 있는지 등과 상관없이 부부 사이에 이혼하겠다는 의사가 합치되고 그러한 이혼 의사를 법원이 확인하면 된다. 한편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가 외도하였거나, 배우자로부터 심한 폭행이나 학대를 받았거나, 배우자가 집을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혼인관계를 파탄으로 이끈 명백한 잘못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무튼 이혼하게 되면 부부 사이에 혼인과 관련 있는 신분과 재산 관계가 정리된다. 배우자라는 신분 관계가 해소돼 서로에 대한 동거의무, 부양의무, 상속권 등이 없어지고, 서로의 친척들과 사이에서는 보통 사돈으로 불리는 ‘인척(姻戚)’ 관계가 없어진다. 부부 사이에 미성년의 자녀가 있다면 친권과 양육권을 행사할 사람을 정해야 하고, 그중 한쪽이 단독으로 정해졌다면 지정되지 않은 사람의 양육비와 면접교섭에 대해 정해야 한다.

재산관계에 관해 우리 민법은 부부의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지고 있던 재산과 혼인 중에 자신의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은 그 한쪽의 온전한 단독 재산(특유재산)으로 취급하는 ‘부부별산제(夫婦別産制)’가 원칙이다. 그런데 부부는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혼인생활 중 함께 형성한 재산이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어떠한 재산이 형식적으로 한쪽의 단독 명의로 되어 있더라도 이혼할 때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부부별산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재산분할을 할 때 한쪽의 특유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전통적으로 혼인 중에 취득한 재산을 대부분 남편 이름으로 해 두는 관행이 있었고 아내는 상대적으로 경제활동능력이 미약해 이혼 후 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배려 때문이었다. 즉 부부 사이의 재산분할은 부부가 혼인 중에 취득한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청산하고 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만, 이혼 이후 각각의 생활보장과 같은 부양적인 고려를 하기도 하고, 혼인관계의 파탄에 누가 잘못이 있는지 그 경위가 참작될 수도 있다.

협의상 이혼을 할 때, 미성년자녀가 있다면 친권자와 양육비에 대해 반드시 정해야 하고 그에 대해 법원의 판결에 준하는 문서가 작성되지만, 재산분할은 협의상 이혼과 반드시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합의가 되었더라도 법원에서 그에 대한 공적인 문서를 주지도 않는다. 재판상 이혼 역시 재산분할 청구가 함께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산분할은 협의상 이혼이든 재판상 이혼이든 이혼한 날로부터 2년 내에만 청구하면 된다.

그러면 이혼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재산분할을 포기하는 것은 효력이 있을까?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 즉 이혼의 효력이 발생한 때 비로소 생긴다. 이혼의 효력은 협의상 이혼의 경우 가정법원에서 발급받은 협의이혼의사확인서를 구청과 같은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 협의이혼 신고를 한 때에 발생하고, 재판상 이혼은 이혼 판결이 확정된 때 발생한다. 그런데 재산분할청구권은 협의 또는 재판에 의해 구체적인 내용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그 범위나 내용이 불명확하다. 협의 또는 재판에 의해 구체화하지 않은 재산분할청구권을 이혼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 즉 이혼의 효력이 발생한 때 비로소 생긴다. 결국 이혼 시 재산분할을 포기하는 내용의 부부재산계약을 결혼 전에 체결해 등기까지 두었더라도 그것만으로 재산분할 청구 자체를 막을 수 없다. [사진 unsplash]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 즉 이혼의 효력이 발생한 때 비로소 생긴다. 결국 이혼 시 재산분할을 포기하는 내용의 부부재산계약을 결혼 전에 체결해 등기까지 두었더라도 그것만으로 재산분할 청구 자체를 막을 수 없다. [사진 unsplash]

협의상 이혼은 부부 쌍방의 자유로운 의사로 이혼에 대한 생각이 일치될 것을 전제로 한다. 혼인이 해소되기 전 단계에서 재산분할청구권 포기를 쉽게 인정하게 되면, 정서적·경험적·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쪽에 있는 배우자는 이혼이나 재산분할에 대해 충분한 고려나 법적 검토 없이 강압에 의해서나 경솔하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우리 법원은 상속재산분할이나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상속재산을 남긴 사람이 사망함으로써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법원은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공동재산 전부를 청산·분배하려는 생각으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액과 이에 대한 각자의 기여도, 재산분할 방법 등에 관해 충분히 협의한 후에 B가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였다면 그것은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로써 유효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A와 B 사이에서는 그러한 진지한 논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B가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B가 작성해 준 각서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B는 A로부터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A와 B가 혼인 전에 각자의 명의로 가지고 있거나 혼인 중에 취득하는 재산은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하고, 혹시 이혼하게 되더라도 서로에 대해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부부재산계약을 결혼하기 전에 체결해 두었다면 결론이 달라졌을까? 우리 민법의 부부재산계약은 자유롭게 내용을 정할 수 있지만 혼인이 종료되면 효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혼인 종료 후의 재산관계, 즉 이혼할 때의 재산분할이나 이혼 후의 양육비나 부양료와 같은 것을 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이혼 시 재산분할을 포기하는 내용의 부부재산계약을 결혼 전에 체결해 등기까지 두었더라도, 그것만으로 재산분할 청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재산분할 재판에서 중요한 기준이나 자료로 참작될 수는 있을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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