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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약속 믿고, 父 백신 후유증 신고한 아들이 겪은 일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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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성을 떠나 백신 접종을 받고 이상 반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 반응이 생겼을 때 어떤 절차로 조사되고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등 세부 내용을 상세히 안내하고 여러 지원을 연계해 드리기 위해 지자체에 중증 이상 반응 담당자를 지정했습니다”  

지난 1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코로나19 백신 이상 반응을 호소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렇게 답했다.

키워드: 백신 이상반응

정 청장은 “코로나19 백신은 신종 백신이기 때문에 인과성이 불명확한 경우에도 중증 사례에 대해서는 1인당 1000만 원 정도 진료비를 지원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며 “추후 조사를 통해 인과성이 확인되면 지원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뉴스1

서울의 한 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뉴스1

하지만 접종 현장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83세 아버지가 백신을 접종한 뒤 겪은 이상반응과 이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현실을 전했다.

정 교수의 아버지는 지난 6일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접종 이후 별 이상이 없었으나 5일 뒤인 11일 낮 갑작스레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급히 119구급대가 아버지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고, 대동맥박리(대동맥 혈관벽이 찢어지는 질환)라는 진단에 따라 인공혈관 수술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후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상반응 신고했더니, 질병청-보건소-병원 핑퐁게임  

정 교수는 이틀날인 12일 보건당국에 백신 이상반응 신고를 하려 시도했다. 가장 먼저 연락한 곳은 질병청 콜센터(1339)였다. 30여분간 통화를 시도한 끝에 어렵게 통화 연결된 질병청 상담원은 “백신 접종을 한 성북구 보건소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다시 보건소에 전화를 건 그는 “병원에 연락해 확인해 보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튿날인 13일 중환자실 면회를 갔을 때,  간호사로부터 “보건소에서 연락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에선 “백신 연관성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는 답을 줬다고 했다. 백신 접종 후 인과성이 확인되지 않아도 진료비 등을 지원할 것이란 정부 발표를 접했던 터라 신고만 하면 관련 절차가 진행되리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질병청-보건소-병원 세 기관이 핑퐁 게임을 하듯 신고ㆍ조사를 서로 떠밀었다.

보건소 직원은 “병원에서 인과성 여부를 증명해 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발표한 지원이 불가하다. 병원에서 확인해주는 경우에만 지원할 수 있고, 사업 지침에 그렇게 나와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묻지도 않은 병원비 얘기를 꺼내며 “비용 문제도 병원에서 확인해줘야 한다. 병원에 연락해서 처리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동맥 박리는 나이와 관계 없이 고혈압 환자에게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급성 질환이다. 주치의는 "100% 확정적인 의견은 아니다"라면서도 "아버지가 2005년 심근경색 수술 이후 2016년까지 고혈압 약을 처방 받은 기록이 있다. 이런 정황에 근거할 때 백신과의 연관성은 90% 이상 없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의 대동맥박리가 백신과 관련이 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과성을 떠나 이상반응 신고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시스템은 이해가 힘들다”고 말했다.

박영준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이상반응이 나타난 환자를)진료한 의사가 신고의 주체”라고 설명했다. 의사보다 가족이 먼저 인지한 경우에는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를 통해 직접 신고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보건소를 통해 병원에 정보가 공유되고 의료진이 당국에 신고하게 돼 있다. 이후 지자체 신속대응팀이 인과성 조사를 하고 질병청 피해조사반이 최종 판단을 내린다.

이상반응 신고는 인과성과 관계 없이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모든 이상반응에 대해, 접종이후 경과 기간과 관계 없이 이뤄지는게 원칙이다. 하지만 이런 절차가 현장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상반응을 겪는 환자나 가족들은 이리저리 핑퐁당하며 상처받고 있다.

정 교수는 “백신과 이상징후 간 인과성을 평가할 자료가 불충분해도 지원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라며 “‘백신보다 다른 이유 가능성이 크거나 명백히 없을 경우’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대동맥 박리는 백신을 맞고 생긴 것이 아니라 그냥 고혈압으로 인한 것으로 의사가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환자와 가족의 일상은 백신 접종 후 완전히 변했고 환자는 죽음 앞에서 서 있다. 지금 상황은 백신 접종 후 발생했다”라며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중요한 이유다. 백신 접종을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당연히 생긴다”라고 말했다.

인과관계 불충분해도 보상한다지만, 인정 사례는 3% 

현재 정부의 백신 보상 기준은 다섯 가지다. ①인과성이 명백할 때다. ②인과성에 개연성이 있거나 ③인과성 가능성이 있을 경우다. 이전까진 이 세 가지 경우에만 보상이 이뤄졌다. 그간 ④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움(④-1 근거자료 불충분, ④-2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경우)과 ⑤명백히 인과성이 없는 경우는 보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최근 ‘④-1’도 보상 대상에 들어가게 됐다.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중환자실에 입원하거나 이에 준하는 질병이 발생했지만, 피해조사반 결과 백신과의 인과성 인정근거가 불충분하다고 판정된 경우다. 하지만 실제로는 ④-1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 코로나19 접종 후 사망 및 중증 사례 198건 심의 결과 ④-1로 인정받은건 6건(3.1%)이다.

정 교수는 “백신 접종을 안했어도 고혈압으로 대동맥 박리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건 100% 확실한 주장이라 볼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같은 이상증상을 보고서도 ‘근거자료 불충분’과 ‘다른 이유 가능성’ 간 차이에서 어떤 의사는 전자에, 어떤 의사는 후자를 판단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정 청장의 지원 약속과 달리 환자와 가족은 의사 개인의 입만 바라보는 보건소 행정의 벽에 부딪쳐 있다. ‘백신을 맞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엉성한 접종 이상반응 신고ㆍ조사 절차 탓에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더 커진다”라며 “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접종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바로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론화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질병청 관계자는 "접종 이후 나타난 어떤 이상반응이라도, 인과성과 관계 없이 신고가 이뤄져야 하는게 맞다"라며 "이상반응 신고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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