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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과민 시대, 손가락도 괴롭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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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의 ‘손가락’이 화제로 떠오른 한 주였습니다.

이지영의 문화톡

지난 13일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 예능상 후보로 참석한 ‘연반인(연예인+일반인)’ 재재가 레드카펫에서 ‘초콜릿 퍼포먼스’를 했던 게 문제로 불거졌습니다. 한 입 크기 초콜릿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는 동작이 ‘남혐’ 논란을 일으킨 겁니다. 남성의 성기 크기가 작다고 조롱하는 뜻의 손동작과 비슷하다는 주장이었지요. 재재가 출연하는 웹 예능 ‘문명특급’ 제작진은 17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초콜릿을 집어 먹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19일엔  “재재의 공중파 출연을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고요.

제57회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에 선 재재.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초콜릿을 집어먹는 이 동작이 남혐 논란을 불러왔다.  [유튜브 캡처]

제57회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에 선 재재.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초콜릿을 집어먹는 이 동작이 남혐 논란을 불러왔다. [유튜브 캡처]

GS25의 경품 이벤트 포스터. 손가락 이미지로 남혐 논란이 불거지자 결국 삭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GS25의 경품 이벤트 포스터. 손가락 이미지로 남혐 논란이 불거지자 결국 삭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엄지ㆍ검지 손동작이 남혐 논란을 일으킨 건 재재가 처음은 아닙니다. 이달초 편의점 브랜드 GS25가 5월 경품 행사 홍보 포스터에 엄지ㆍ검지로 소시지를 집으려고 하는 이미지를 넣었다가 곤욕을 치렀지요. 곧이어 BBQㆍ무신사ㆍ경찰청 등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한 곳들이 줄줄이 구설수에 올랐고요. 해당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자 BBQ는 지난 7일 “논란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성한다”고 공식사과까지 했는데, 이런 논란을 예측해서 대비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물론 손가락은 욕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만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신체부위입니다. 나라마다 금기시하는 동작이 따로 있기도 하고요. 얼마전 미국의 퀴즈쇼 ‘제퍼디’의 우승자가 3연승을 확정하는 순간 중지ㆍ약지ㆍ소지를 펴들며 ‘숫자 3’을 표시했다가 백인 우월단체 ‘KKK’의 상징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라고 못박으면서, 미국 민주당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 사이의 깊은 반감이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혐오에 대한 과민한 경계심 때문에 엉뚱한 손가락만 운신의 폭이 좁아진 셈이지요.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조심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일베’와 ‘메갈’로 대표되는 여혐ㆍ남혐 커뮤니티의 용어나 동작을 사용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게 된거죠. ‘오또케’와 ‘쿵쾅쿵쾅’은 여혐 용어이고 ‘웅앵웅’ ‘허버허버’ ‘힘죠’ 등은 남혐 용어라는데, 왜 이들 단어가 혐오 표현이 됐는지 이해가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쓴다 해서 이해받기는 힘든 분위기입니다. 지난달 방송인 공서영이 자신의 SNS에 “우리동네 베라 힘죠!!”라는 글을 올렸다가 남혐 논란을 불러왔고, 결국 “그런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앞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더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하면서 겨우 마무리됐었지요.

상황이 계속 이렇게 흘러간다면 문서 작성 후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을 돌리듯 ‘혐오 단어 검사’를 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손가락 동작도 그냥 무난하게 ‘V’자로 통일해야 되려나요. 앗, 선거철에는 ‘V’도 ‘기호 2’로 오해받을 수 있을테니 이래저래 살얼음판 걷기입니다.

이지영 문화팀장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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