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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농장 탈출 반달곰, 다시 악몽의 철창 돌아간 '딱한 사연'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법 사육농장서 탈출한 울산 반달곰 사연 

지난 19일 오전 10시 54분쯤 울산소방본부. “울주군 범서읍의 한 농가에 곰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까만 곰이 나무를 타고 오르거나 텃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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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곰의 가슴 부위에 'V자' 모양의 하얀 털이 선명하게 나 있어서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에게 다가간 소방대원은 과자와 과일을 건넸다. 먹이로 반달가슴곰을 유인한 뒤 생포하기 위해서였다. 곰은 마침 배가 고팠는지 소방대원이 건넨 카스타드 2박스, 초코파이 1박스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이후 소방대원들은 곰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마취총을 쏴 5시간 만에 포획에 성공했다. 70㎏가량의 3~4살 된 암컷 곰은 포획되기 전에도 비교적 온순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최초 목격한 주민이 “안녕”이라고 인사하자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도 했다.

"안녕" 주민이 인사하자 쳐다봐

지난 19일 오후 울산 울주군 범서읍 한 농장 인근에 반달곰으로 추정되는 곰이 나타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뉴스1

지난 19일 오후 울산 울주군 범서읍 한 농장 인근에 반달곰으로 추정되는 곰이 나타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뉴스1

같은 날 오전. 인근의 한 농가에서는 “곰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곰이 나타난 지점에서 2㎞ 정도 떨어진 곰 사육농가였다. 낙동강유역환경청과 녹색연합 등이 확인한 결과 해당 농가는 불법으로 곰을 사육하는 곳이었다.

국내에서 곰을 사육하려면 시설등록 허가 등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허가를 받지 않고 경기도 용인의 불법 농가에서 돈을 받고 곰을 키우고 있었다. 이 농가는 지난해에도 불법 사육 혐의로 고발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구조된 반달가슴곰은 불법 사육농가의 철장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반달가슴곰을 보호할 시설이 없어서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보통 야생동물을 구조하면 울산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로 보내는데 반달가슴곰은 이곳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데다 농가에서 소유권을 주장해 결국 다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종 복원 VS 몸보신…같은 생명 다른 무게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달리 사육농가에서 키우는 곰은 열악한 환경에서 음식쓰레기를 먹으며 자란다. 사진 동물자유연대.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달리 사육농가에서 키우는 곰은 열악한 환경에서 음식쓰레기를 먹으며 자란다. 사진 동물자유연대.

국내에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두 종류의 반달가슴곰이 있다. 바로 ‘복원을 위한’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웅담 확보를 위한’ 사육 곰이다. 이를 두고 동물자유연대 측은 “같은 생명, 다른 무게”라고 표현한다.

현재 지리산 일대에 사는 반달가슴곰 50여 마리는 환경부에서 종 복원을 위해 지리산에 방사한 곰이다. 지리산에서 세 차례 탈출해 명성을 얻은 반달가슴곰 KM-53이 대표적이다. 반면 이른바 ‘몸보신용’으로 웅담(바람에 말린 곰의 쓸개)을 판매하기 위해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도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인공증식하기 위해서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곰 사육 농가의 환경은 동물원 등에 비해서 매우 열악한 탓에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결국 증식 허가를 받지 못한 농가들에서 불법 증식이 이뤄진다는 게 녹색연합 측 설명이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환경부에 적발된 불법 증식개체는 36마리에 달한다.

그렇다면 환경당국은 왜 웅담 판매를 허용하는 것일까. 과거 정부는 1981년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 사육을 권장했다. 하지만 불과 4년 뒤 곰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되면서 수입과 수출이 금지됐다. 이미 곰을 들여온 농가들은 반발했고, 정부는 곰을 죽여 웅담을 얻는 것을 허용했다. 지난해 12월 현재 국내에서 키워지는 전체 사육 곰은 407마리다.

환경부가 제공한 사육곰 개체수와 사육 농장 현황 자료. [사진 동물자유연대]

환경부가 제공한 사육곰 개체수와 사육 농장 현황 자료. [사진 동물자유연대]

녹색연합과 동물자유연대가 환경부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육 곰 수는 1985년 493마리에서 2005년 1454마리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7년 660마리, 2018년 540마리, 2019년 6월 현재 479마리로 감소 추세다.

곰을 사육하는 농가 수도 2005년 1454곳에서 2017년 660곳, 2018년 32곳, 2019년 6월 현재 31곳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사육농가 “코로나19 이겨낸다” 광고도 

반달가슴곰 사육 농장의 웅담 판매 홍보지. [사진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

반달가슴곰 사육 농장의 웅담 판매 홍보지. [사진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

동물자유연대 등에 따르면 농가에서는 최소한의 개 사료나 음식물 쓰레기 등을 주며 곰을 키운다.동물자유연대 측은 열악한 사육환경을 알리기 위해 사육 농가에서 웅담뿐 아니라 곰고기를 도려내며 이를 ‘특별식’으로 소개하는 실태를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동물보호연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곰 사육 농가에서는 “코로나19를 이겨낸다”며 웅담 판매를 광고하기도 했다.

불법 농가들은 고발이 되더라도 “반달가슴곰을 몰수해 보호할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200만~300만원의 벌금형에 그쳐왔다. 동물보호단체의 실태 고발로 지난해 12월에야 국회 본회의에서 사육 곰 및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을 만들 예산이 확정됐다.

국내 첫 보호시설은 90억원을 투입해 오는 2024년 지리산 자락인 전남 구례군에 들어선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보호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반달가슴곰이 좁은 우리에서 고통받으며 웅담을 채취당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달가슴곰의 실태. 사진 녹색연합.

국내 반달가슴곰의 실태. 사진 녹색연합.

동물보호단체들은 한쪽에서는 반달가슴곰 종 복원을 하면서, 불법 증식은 방치하는 모순된 정부 정책을 지적했다. 박은정 녹색연합 녹색생명팀 팀장은 “부실한 관리감독과 모순적인 정부 정책 아래 암시장과 곰 임대 등 불법이 불법을 낳고 있다”며 “그나마 구례에 들어설 곰 보호시설을 통해 불법증식 된 반달가슴곰을 몰수하고 국가가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도 “사육 곰 농가의 전·폐업 유도 등 사육 곰 산업을 종식시킬 정부의 로드맵이 있어야 보호시설도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국내 반달가슴곰의 실태. 사진 녹색연합.

국내 반달가슴곰의 실태. 사진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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