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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스포츠, NFT를 만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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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30면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2016년 3월, ‘세기의 바둑 대결’이 서울에서 열렸다.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다섯 차례 대국에서 이 9단이 유일하게 이긴 게 제4국이다. 이 대국이 대체불가토큰(NFT·Non Fungible Token)으로 만들어져 경매에 올랐다. 낙찰가는 2억원을 넘었다.

이세돌-알파고 대국, 2억원 이상에 팔려 #가상-실제세계 융합, 스포츠 소비도 변화

블록체인 스타트업 ‘22세기미디어’가 이 NFT를 만들고 경매에 부쳤다. 이 업체에 따르면 지난 11일 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씨’(OpenSea)에서 진행된 경매의 낙찰가는 60이더(이더리움)였다. 당시 시세로 약 2억5020만원이고, 현재는 이더리움 가격이 좀 떨어졌지만 어쨌든 2억원 안팎이다.

이 NFT는 바둑판 위에 알파고가 둔 흑돌과 이세돌의 백돌이 차례로 놓이는 모습,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백 78수가 표시된 기보를 배경으로 한 이 9단의 사진·서명 등을 담았다.

NFT 거래소 오픈씨에는 낯익은 축구 선수들의 모습도 보인다. 대표적인 게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주장 구자철(32·알 가라파)이다. 구자철은 일본과의 3~4위전에서 2-0으로 달아나는 쐐기골을 터뜨려 한국 축구의 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구자철은 ‘핀슬 콜렉티브’라는 기업을 통해 3~4위전에서 입었던 유니폼 상의를 NFT로 만들었다. 유니폼이 펄럭이거나 앞뒤가 바뀌는 장면 등이 담겼는데 완성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 240개 한정판을 만들어 올렸고, 1개가 1이더에 팔렸다. 축구선수 개인이 NFT를 발매한 건 구자철이 국내 최초다.

많은 사람에게 개념조차 낯설지만 NFT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쑥 들어와 있다. NFT란 미술작품·사진·영상 등 보관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디지털 파일로 만든, 일종의 ‘디지털 진품 증명서’다.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기 때문에 위·변조, 도난, 분실, 훼손의 위험이 없다. 미술품처럼 소장하고 있다가 값이 오르면 되팔 수도 있어 투자의 개념도 들어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해 NFT로 만든 뒤 원본을 불태워버리는, 다소 과격한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도 있다.

스포츠는 NFT와 매우 잘 어울리는 분야다. 드라마 같은 승부, 격렬한 몸싸움과 최선을 다하는 신체의 아름다움이 담긴 영상과 사진은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다. 특정 선수나 구단을 좋아하는 팬들이 NFT를 구매하고 싶어 한다. 미국프로농구 명장면을 짧은 영상에 담은 ‘NBA Top Shot’이 큰 성공을 거뒀고,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도 K리그 골 장면 등을 NFT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NFT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이 몇 십억원에 팔리는 게 말이 되나.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시중에 넘쳐난 돈이 몰리면서 거품이 잔뜩 끼었다” 같은 반응이다.

그럼에도 가상과 실제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온-오프라인이 융합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초창기 혼돈과 무질서는 자정(自淨) 작용을 거치며 차츰 줄어들 것이다. 선수카드 NFT만 봐도 축구 비디오게임 업체 ‘소레어’(Sorare)와 계약된 구단의 선수는 합리적인 가격이 책정돼 있다. 로멜루 루카쿠(인테르 밀란)는 20.439이더, 기성용(FC 서울)은 3.1875이더다. 반면 제작 주체와 저작권이 불분명하면 손흥민 카드라고 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경기장에 못 가는 대신  집에서 좋아하는 스타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온라인 또는 가상 공간에서 내가 구단주·감독이 돼 팀을 만들고 선수들을 사고팔고 작전을 짜서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스포츠의 영토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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