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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2021년 서울, 부처님오신날 풍경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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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31면

김창우 사회 에디터

김창우 사회 에디터

부처님 오신 날인 지난 19일 서울의 대표적인 불교 사찰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때아닌 소란이 벌어졌다. 아침부터 청년 20여명이 산문 앞에서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른 것이다. 이들은 ‘예수 천국, 불교 지옥’ 등의 팻말을 든 채 스님들에게 “회개하라”고 고함을 쳤다. 이 청년들은 5시간이 지난 오후 2시쯤 해산했다. 조계사 측은 이들을 고발하지는 않았다. 이날 조계사뿐 아니라 강남구 봉은사에도 소란이 일었다. 오후 4시쯤 한 여성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봉은사 법당에 난입해 “스님을 만나겠다”고 소리를 지르다 경찰에 연행됐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탈 #언제까지 ‘일부의 문제’로 놔둘 텐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종교 갈등이 적은 편이다. 특히 가톨릭과 불교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교황청의 미겔 앙헬 아유소 기소 추기경은 “온 세상의 불자들 마음에 기쁨과 평온과 희망이 깃들기를 기도드린다”는 경축 메시지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마음을 깨끗이 한다면 우리 세상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형 스님이 “인류에게 사랑과 평화의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합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천태종 대전 광수사 주지 무원스님, 반야선원의 세진 스님 등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고 말했다. 성당과 사찰에서 축하 화환과 플래카드 등을 주고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도들의 타 종교 비방 활동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는 개신교도 여성이 경기도 남양주의 수진사에 불을 질렀다. 이 여성은 지난해 초부터 불상에 돌을 던지고 승려와 신도들에게 “하나님 믿으세요”라고 ‘전도’를 했다. 검찰 조사를 받다 잠적해 지명수배 상태로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이런 일을 ‘땅밟기’라고 부른다. 타 종교의 성지를 찾아 예배를 드린 후 정화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10년에는 개신교 청년들이 봉은사와 대구 동화사 땅밟기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고, 이듬해에는 조계사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하나님 덕분에 쌀밥 먹고 사는 거야”라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2014년에는 인도의 불교 성지인 마하보디 사원에서 한국 대학생 세 명이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른 일도 벌어졌다. 매년 여름 라마단(단식) 기간이 되면 서울 한남동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 몰려와 땅밟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모든 개신교에서 이런 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인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17일 “모든 승가와 불자의 선한 마음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큰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는 부처님 오신 날 축하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개신교 목사들은 “다른 교회 신도들이 벌인 일” “일부 신도들의 일탈을 전체의 문제처럼 과장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일부 목사들은 “잘못도 아니지만 어쨌든 논란을 일으켜 유감”이라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언제까지 ‘일부’라는 장막에 숨어 갈등을 조장할 것인가. 지난해 수진사 방화사건이 벌어진 후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반사회적 폭력 행위가 개신교 교리에 위배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공표하라”고 요구했다. 일탈 행동의 일차적 원인은 잘못된 개개인의 믿음이지만, 그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벌였다면 교단의 권위 있는 어른이나 기구에서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공표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교회와는 아무 관련 없는, 그 사람 개인만의 문제’라고 치부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내년 이맘때, 국내외 어디에선가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것이다. 그때도 ‘일부의 문제’라는 말만 되뇔 참인가.

김창우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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