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놓고 돈 먹는 금융 시장, 국부를 좀먹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22 00:20

지면보기

737호 20면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쓴소리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산업 성장 통한 불평등 해법 제시

모두 잘 살아야 진정한 부유국
공정한 정부가 제 역할 해야

고백하자면 나는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팬이다. 이번에 그의 새 책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가 번역출간 되었다기에 얼른 읽고 싶어서 서평을 자청했을 정도로 말이다. 특정 저자의 팬이 되는 것은 단순히 생각과 주장에 동조하는 정도로만은 부족하다. 세계관과 감성적 코드도 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자의 팬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그의 전작인 『불평등의 대가』는 나의 오래된 체증과 같은 궁금증에 해답을 제시해준 책이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꾸준히 발전했고 나라에 돈은 쌓였지만, 개인의 경제적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와해되는 현실. 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봉건적 지대추구형 경제가 만연한다는 건 웬만하면 눈치챌 수 있었다. 하나 오랫동안 그것은 우리나라 시장의 플레이어들, 특히 재벌과 부자들의 개별적 모럴과 탐욕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와 월가에서 일어난 오큐파이 운동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부익부빈익빈’ 같은 양극화가 시장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됐다. 2010년대로 접어들어서야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에 나타난 불평등과 불공정을 분석하고, 그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탁월한 저작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책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었을 거다. 피케티의 분석은 치밀하고, 메시지는 분명하고, 비판은 날카로웠다. 경제학자의 언어로 쓰인 이 책은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었지만, 일반 독자가 다 읽기엔 어렵고 지루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불평등의 대가』는 그렇게 큰 대중적 관심까지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큐파이 운동의 구호였던 1:99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동안 자본주의 시장이 어떻게 1%를 위해 헌신해왔는지를 보통의 교양인이라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차분히 풀어나갔다.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경제학 책. 비판이 곧바로 처단과 응징의 언어로 이어지는 사납고도 격앙된 어조가 아니라 해결 방안과 설득의 언어로 쓰인 이 책은 분석은 냉철했지만, 시각은 따뜻했다.

경제 불평등을 바로잡는 방법은 뭘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새 책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생산성을 키우되 그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지난 2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수출 선적부두 모습. [뉴스1]

경제 불평등을 바로잡는 방법은 뭘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새 책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생산성을 키우되 그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지난 2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수출 선적부두 모습. [뉴스1]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는 앞선 저작처럼 격한 감동을 일으킨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스티글리츠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특히 ‘국부’(國富)로 시작하는 첫 챕터부터 확 흥미로웠다. 현대경제학의 출발점이자 시장경제의 바이블로 통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이어받아 ‘국부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국부를 늘려 지금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결하는 정부의 역할론으로 확대한다.

이게 반가웠던 건 모든 사안을 좌우의 진영논리로 보는 우리 사회에서 그가 불평등을 논한 경제학자라는 점만으로 가볍게 ‘좌파 경제학자’로 분류해버리는 일부의 경박한 풍토에 반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양심적 자본주의자는 불평등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애덤 스미스를 빌어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진정한 국부의 평가 기준은 모든 시민에게 유지 가능한 방식으로 높은 생활 수준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정의한다. 높은 생활 수준은 화려한 숫자로 표현되는 금융적인 부와 금 보유량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적 부의 성장은 실질적인 국부의 희생을 통해 이뤄졌고, 이 때문에 지금의 금융화 시대에 성장이 둔화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의 해결책은 고전적인데 설득력이 있다. 다시 생산성으로 돌아가라는 것. 한데 단순히 생산량 증가가 아니라 일반 시민이 그런 증가로부터 공정한 몫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공정한 정부’다. 그는 정책을 통한 시장문제의 해결을 제시한다.

이 책은 트럼프 정부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많은 양을 할애하고, 전적으로 미국의 관점에서 쓰였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 문제와는 좀 동떨어진 현실과 생각도 많다. 그렇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석과 관점,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석하는 데에 큰 인사이트를 주는 건 분명하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