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아바타로 채팅하고 게임 캐릭터가 패션 론칭…가상·현실 융합 열풍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22 00:02

업데이트 2021.05.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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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08면

[SPECIAL REPORT]
‘제2 디지털 빅뱅’ 메타버스

새내기 직장인 신승희(23)씨는 요즘 퇴근 후 ‘제페토’에 접속해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낸다. 제페토는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증강현실(AR)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이다. 이용자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촬영한다. 그러면 자신을 빼닮은 3차원(3D)의 캐릭터(아바타)가 생성된다. 취향대로 옷을 입히고 헤어스타일을 골라서 아바타를 꾸밀 수 있다. 표정과 몸짓도 정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부캐(부캐릭터)’인 셈이다.

‘MZ세대 놀이터’서 산업계로 확산
비대면 늘고 통신 발달이 원동력

연속·동시·상호운영·경제성 특징
게임 넘어 유통·교육·의료서 활용

2030년 글로벌 시장 규모 1742조
세부 기술 보완, 콘텐트 강화 숙제

신씨는 이렇게 만든 온라인의 부캐로 친구·지인들과 만나 채팅은 물론 같이 게임을 하거나, 때론 쇼핑을 하고 춤을 추면서 즐거움을 공유한다. 신씨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엔 여럿이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클럽에서 춤을 췄는데 그런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워졌기에 이런 식으로 대리만족하고 있다”며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곳이라 가상공간인데도 종종 현실처럼 느낀다”고 전했다. 현재 제페토 가입자는 국내외를 통틀어 2억 명을 넘어섰다. 신씨 같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출생한 Z세대) 사이에서 특히 인기다.

네이버 ‘제페토’ 전 세계 2억 명 이용  

코로나19 시대의 신풍속인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메타버스는 영어로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가상의 것을 의미하는 ‘메타’(Meta)를 합친 말이다.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뜻 그대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3D로 구현한 상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메타버스에선 연속성·동시성·실재감·상호운영성·경제성이라는 다섯 가지 특징이 나타나 단순 가상현실(VR)이나 AR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이 그걸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이어진다(연속성). 네이버는 올 1월 신입사원 연수를 제페토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이처럼 여럿이 동시에 활동하거나, 누구는 채팅을 할 때 누구는 게임을 하는 등 동시간대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동시성). 메타버스가 사회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1인용 또는 일회성 VR·AR 체험은 메타버스 범주 안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용자의 대화 소재나 행동의 초점이 ‘언제 어디서 (게임) 퀘스트를 수행할지’ 정도에만 집중했던 기존의 일반 온라인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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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이용자는 가상공간을 현실의 사회·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실재감). 현실과 가상공간 간의 데이터 연동도 자유롭다(상호운영성). 개인이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만나 느끼는 모든 정보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 메타버스의 각계각층 구성원을 포섭한다. 기업은 이렇게 쌓인 메타버스 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화·서비스 등의 거래를 주선하고, 스스로도 경제적 이익 창출에 나선다(경제성). 제페토의 경우 ‘젬’이라는 자체 화폐를 통해 다양한 상품 구매가 가능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메타버스는 일부 마니아 사이에서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다. 2009년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썸머워즈’는 가상공간 안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세계로 이어지는 상황을 묘사했다. 제페토만 해도 첫 출시 시점이 2018년으로 3년 전이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는 과거에도 있었기에 새로운 게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재택근무나 학생들의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하면서 기술 진화 속도가 빨라지고 대중의 관심이 급증했다”며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MZ세대가 주도적으로 시장에 참여해 기업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메타버스 열풍은 지난해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급속도로 거세졌다. 월드스타 BTS(방탄소년단)는 지난해 9월 신곡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미국 기업 에픽게임즈의 인기 온라인 액션 게임 ‘포트나이트’ 내 공간에서 처음 공개해 전 세계 MZ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국 로블록스가 2006년 정식 발매한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최근 미국의 16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 영상 시청에 쓰는 시간의 2.5배를 로블록스에 쓰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 3월 로블록스는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게임에서 비롯된 이런 메타버스 열풍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 등은 지난해 일본 닌텐도의 메타버스 게임 ‘동물의 숲’ 내에서 신상품을 공개했다. 게임 속 캐릭터에게 해당 브랜드 옷과 동일한 디자인의 가상 옷을 입혀 소비자 반응을 미리 살피기 위해서다. 소비자가 백화점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찾지 않아도, 혹은 평소 패션에 관심이 덜했어도 메타버스에서 이들 브랜드를 접하고 실물 구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 소비자와 기업 모두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마케팅 수단이다.

독일의 완성차 업체인 BMW는 18개월 분량의 엔지니어 교육 프로그램을 AR 기반으로 구성했다. 메타버스에 친숙한 젊은 ‘신참’들이 내용을 쉽고 빠르게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미국 DHL도 AR로 물품 정보 처리 시간을 단축해 운송 효율을 25%가량 개선했다.

신석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메타버스는 제품·서비스 개발은 물론 유통·소매, 교육 훈련, 프로세스 개선,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다”며 “보수적인 금융권도 VR과 AR 등의 도입으로 온·오프라인 연계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진국의 금융사는 이미 관련 행보에 적극 나섰다. 캐나다 TD은행은 VIP 고객이 각 지점에서 투자 상담을 요청하면 AR 기기를 통해 고객의 투자 포트폴리오 등 핵심 자료를 재구성, 시각화해 오프라인에서 더 효과적인 상담이 가능하도록 했다.

MR·XR 등 신기술로 몰입도 극대화

메타버스의 이 같은 인기 속에 기반 기술인 VR과 AR 시장은 쑥쑥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PwC 등에 따르면 2019년 455억 달러였던 글로벌 VR·AR 시장 규모는 2025년 4764억 달러, 2030년 1조5429억 달러(약 174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메타버스를 인터넷·스마트폰 이후 ‘제2의 디지털 빅뱅’ 주체로까지 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보고서에서 메타버스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할 핵심 기술’로 분석했다. 정부도 메타버스 산업 본격 육성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VR·AR 등의 실감형 콘텐트 육성 예산으로 1355억원을 배정했다. 2019년(261억원)의 5배가 넘는 수치다.

메타버스가 산업적으로 더 발전하려면 관건은 세부 기술 안정화와 콘텐트 강화다. 정일권 ETRI 콘텐츠연구본부장은 “메타버스를 게임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점에서 좁게 봐선 안 되고 디지털 자산 유통, 이용자 인증과 보안 등의 넓은 범위에서 봐야 한다”며 “신원 보증을 위한 블록체인 기술, 데이터 로그를 살펴 비정상을 바로잡는 에이전트 기술 등의 세부 기술 보완에 힘쓸 때”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VR과 AR을 융합한 혼합현실(MR), 셋을 아우르는 확장현실(XR) 등 가상공간과 현실 간 구분을 한층 어렵게 하는 기술로 이용자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초(超) 실감형 콘텐트 강화에 매진해 세계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현대차·선익시스템 등 중·소·대기업 모두 뛰어들어
정부와 산업계는 18일 경기도 판교 ICT문화융합센터에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가졌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와 산업계는 18일 경기도 판교 ICT문화융합센터에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가졌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메타버스 열풍 속에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기반 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VR·AR은 2010년대 초반 무렵부터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한 분야이지만, 이후 성장세는 기대에 못 미쳤다. 지난해 전 세계 VR·AR 기기 출하량은 전년보다 감소한 470만대에 그친 바 있다. 올해는 이보다 82.3% 증가한 860만대에 달할 전망(2025년엔 5290만대)이다.

김성광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 사무총장은 “VR·AR 시장은 오랜 약점인 콘텐트 부족의 한계와 기기 보급 문제가 겹쳐 이제껏 (시장이) 기대만큼 커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메타버스 콘텐트가 부상했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 많은 인기 콘텐트가 쏟아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이에 산업계의 행보도 빨라졌다.

삼성전자는 안경 형태의 AR 기기인 ‘AR 글래스’를 개발 중이다. 업무상의 편의를 돕는 AR 오피스 기능과 함께 홀로그램 통화, AR 시뮬레이션 등의 기능을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1인칭 시점에서 드론(무인항공기)을 조종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AR 캔버스’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의 베타 버전도 출시했다. AR 콘텐트를 활용해 이용자의 주변 공간을 꾸밀 수 있는 툴을 제공하는 앱이다. 3차원(3D) 텍스트와 평면 그림 스캔 등으로 현실의 공간을 꾸며 앱에 저장했다가, 다음에 같은 장소에서 이를 불러내서 감상하거나 편집할 수 있다. 자주 가는 카페나 집안에 AR로 나만의 낙서를 남기거나 사진을 붙일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CJ ENM 등은 국내 메타버스 산업 발전을 위한 동맹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8일 이런 내용을 담은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열었다. 조경식 과기정통부 2차관은 “다양한 기업이 메타버스 관련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협력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역시 메타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중견·중소기업도 메타버스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선익시스템은 VR·AR 기기 생산에 필요한 증착(蒸着) 장비 공급에 나섰다. 엠게임은 미국의 메타버스 기업 유니티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제공 관련 마스터 라이선스 협약을 체결했다. 위지윅스튜디오는 뉴미디어 콘텐트의 기획과 제작 서비스를 강화 중이다. 국내 증시에도 상장된 이들 기업 주가는 시장의 큰 기대 속에 연초 대비 급등했다.

이창균 기자

이창균 기자, 원동욱 인턴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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