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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피아노 한 대, 남편 밀어줬다…천재 女작곡가에 생긴 일 [고전적하루]

중앙일보

입력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클라라 슈만. [사진 풍월당]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클라라 슈만. [사진 풍월당]

직업이 똑같이 ‘음악가’인 남녀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피아노는 한 대.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내는 남편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로 결심합니다. 결혼하던 날 일기에 “그 사람과 이별을 상상만 해도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고 썼던 여성은, 남편이 피아노를 다 쓰고 나면 그제서야 피아노를 만질 수 있었죠. 음악적 영감과 씨름하던 남편이 맥주 한 잔을 마시러 집을 나서고서야 피아노 앞아 앉았습니다.

보다못한 친정 아버지가 피아노를 한 대 보내주죠. 하지만 자녀를 8명 낳고(3명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은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가정에서 여성은 음악가가 아니라 아내가 돼야만 했습니다.

이 여성은 클라라 슈만(1819~96). 결혼 전의 이름은 클라라 비크였습니다. 남편은 로베르트 슈만(1810~56). 19세기 독일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거장이죠. 하지만 결혼 전엔 클라라가 더 빛났습니다. 18세에 오스트리아 황제가 인정한 음악가가 됐고, 쇼팽과 리스트가 그의 피아노 연주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로베르트는 아내와 함께한 자리에서 “당신도 음악가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사람이었고요. 하지만 결혼 후 로베르트의 음악은 꽃을 피웁니다. 클라라는 “그는 꼭 교향곡을 써야하는 사람”이라며 힘껏 지지해줍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선 이런 글을 남깁니다. “여자는 작곡가를 꿈꾸면 안된다. 지금까지 어떤 여자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왜 하려고 했을까? 아버지가 작곡을 가르쳐줘서 그렇게 교만하게 된 것이겠지.” 또 자신의 작품에는 ‘여성적이고 감상적인 몇개의 소품’ 같은 제목을 붙입니다.

엄청난 뒷바라지를 받던 로베르트 슈만은 정신 이상이 극심해져 강에 뛰어들어 자살 시도를 하고, 결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클라라는 그 후 40년을 더 살며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홀로 헌신했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딸이 9세 연상의 로베르트와 사랑에 빠졌을 때부터 격렬히 반대 했습니다. 연애 편지를 다 버리도록 했고, 수년동안 재판까지 벌여 결혼을 막았죠. 유럽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어린 딸이 장래가 불투명한 작곡가와 함께 하게 놔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대가 커질수록 더욱 가까워졌던 커플의 러브스토리는 로맨틱하지만, 클라라라는 여성의 삶은 마냥 아름답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한 명의 여성 파니 멘델스존(1805~47)의 삶도 그랬습니다. 400곡이나 작곡했지만, 동생 펠릭스(1809~47)의 음악만이 유명하죠. ‘여성의 이름으로 어떻게 작곡을’이라는 생각에 가둬졌던 파니는 첫 작품을 출판하고 2년 뒤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팟캐스트 ‘고전적하루’ 두번째 편에서는 이 여성들의 이야기와 음악을 들어봅니다. 중앙일보 팟캐스트 플랫폼 J팟(https://www.joongang.co.kr/Jpod/Channel/9)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고전적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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