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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미로에 갇힌 택시기사...美영화제 "놀랍다" 극찬한 단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까지 온라인 상영하는 미국 샌프랜시스코 아시안 아메리칸 미디어 센터 영화제(CAAMfest)에 초청된 한국 감독 효민의 단편 '아파트'. [사진 CAAMfest]

23일까지 온라인 상영하는 미국 샌프랜시스코 아시안 아메리칸 미디어 센터 영화제(CAAMfest)에 초청된 한국 감독 효민의 단편 '아파트'. [사진 CAAMfest]

한국 신화 속 ‘도깨비(Dokkaebi)’를 한국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로 재해석한 음악회부터 한국계 미국인 희극인 겸 배우 마거릿 조 대담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13일 비대면 개막한 올해 ‘아시안 아메리칸 미디어 센터 영화제(CAAMfest)’가 한국을 조명한 특별행사들이다.

아시안 아메리칸 미디어 센터 영화제 #한국 신인감독 효민 단편 '아파트' 눈길 #코로나19로 23일까지 비대면 개최

1982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로 출발해 201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이 영화제는 매해 미국 안팎 아시아계 감독 신작을 소개하며 미국 최대 아시아 영화 진열창으로 꼽혀온 터. 올해는 특히 한국 색이 도드라진다.

23일까지 영화제 홈페이지(https://CAAMfest.com/2021/)를 통해 온라인 관람할 수 있는 초청작 중엔 마거릿 조 주연 공포영화 ‘코리아타운 고스트 스토리’, 서울에서 보낸 유년기를 돌이키는 뉴요커 아연의 정체성 고민을 담은 엘린 윤 감독의 ‘키메라’ 등 한국계 신작이 다채롭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한국 감독 단편 '아파트' "놀랍고 창조적"

효민 감독. [사진 CAAMfest]

효민 감독. [사진 CAAMfest]

한국 일상풍경을 담은 한국 감독 작품으론 ‘비명 지르지 말 것 단편(DON'T SCREEM SHORTS)’ 섹션에 포함된 신인 효민(25‧본명 봉효민) 감독의 단편영화 ‘아파트’가 유일하게 선정됐다. 한국의 독특한 아파트 단지 구조와 택시기사 캐릭터를 버무린 관찰력이 절묘하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에서 손님을 내려준 택시기사(임성재)가 비슷비슷한 아파트 미로에서 길을 잃는 여정을 18분여 펼쳐낸다. “놀랍고 창조적인 영화(stunning and creative film)”라고 영화제 측은 소개했다.

17일 본지와 통화한 효민 감독은 “코로나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못 가서 아쉽지만 이름 있는 큰 영화제 공식 선정은 처음이어서 의미가 크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한테도 자랑했는데 영화가 무섭다고 하시더라”고 소감을 말했다. 영화는 그의 실제 경험이 토대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갔는데 놀이터 옆이라고 설명해줘도 어딘지 못 찾겠더라고요. 다 똑같잖아요. 택시기사가 길을 잃으면 어떨까, 친구와 했던 농담에서 출발했죠.”

아파트 미로에 갇힌 택시기사의 불안

처음엔 휴대폰 내비게이션 조작에 서툰 백발 성성한 택시기사로 설정했지만, 너무 뻔한 설정 같아 30대 전후로 바꿨다. 세대 차를 걷어낸 대신 강남의 대단지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는 택시기사라는 계급 차는 더욱 강조됐다. “손님한테 길을 잘 안 물어보는 설정은 택시기사님들의 자존심이죠. 실제로도 그런 적을 몇 번 봤어요.”

단편 '아파트'. [사진 CAAMfest]

단편 '아파트'. [사진 CAAMfest]

“일상속에도 극적인 순간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아파트 단지를 헤매는 주황색 택시를 덫에 갇힌 생쥐처럼 내려다본 직부감샷, 택시 앞유리창에 검게 어른대는 나무그늘 등에 날카로운 현악 선율을 더해 한낮의 평범한 일상 풍경에 불길한 기운을 길어넣었다.

손님들한테 아는척을 늘어놨던 택시기사는 낯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의문의 사람들로 인해 점점 불안해진다. 이는 “코너를 돌 때 뭔가 튀어나올까봐 불안해진다”는 효민 감독이 평소 감정을 스릴러 느낌으로 구현한 것이다. “아버지 얘기를 괜히 꺼내나 싶지만, 밖에 나가면 우리 가족이 늘 시선을 받잖아요. 택시기사들도 그런 시선의 압박이 있지 않을까. 제가 여태까지 느껴온 불안과 시선에 대한 오브제로 연출했죠.”

요즘 한국, 피부로 체감할 만큼 '핫'하죠

한국계 미국 배우 겸 희극인 마거릿 조가 올해 CAAMfest에서 주연작인 호러 단편 '코리아타운 고스트 스토리' 상영과 함께 특별 대담을 가졌다. [사진 CAAMfest]

한국계 미국 배우 겸 희극인 마거릿 조가 올해 CAAMfest에서 주연작인 호러 단편 '코리아타운 고스트 스토리' 상영과 함께 특별 대담을 가졌다. [사진 CAAMfest]

효민 감독의 아버지는 유명 영화감독이다(아버지의 이름을 기사에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어릴 적부터 “망상에 빠져 글 쓰는 걸 좋아했다”는 효민 감독은 2017년 연출 데뷔작인 단편 ‘결혼식’을 만든 이래 아버지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작품활동을 해나가기 위해 성을 떼고 이름만 필명으로 써왔다.

‘결혼식’은 우연히 접한 시나리오 공모전에 직접 써둔 단편소설을 매만져 냈다가 덜컥 당선되면서 영화로 찍게 됐다.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손호준)이 고교 시절단짝(손석구)의 결혼식에 가서 수화로 어떤 고백을 하는 내용이다. “어릴 때부터 답답한 게 많았어요. 친구들한테 얘기해도 이해 못 받는 게 많고. 무의식적으로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게 됐던 것 같아요.”

‘결혼식’을 만들며 “이렇게 재밌는 것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밴쿠버필름스쿨에서 유학하며 단편 ‘어퍼처(Aperture)’를 찍었다. ‘아파트’가 세 번째 연출작이다. ‘1987’ 제작지원, ‘PMC:더 벙커’ 해외 배우 캐스팅에 더해 할리우드 영화 ‘블랙 팬서’ DI팀 통역, ‘옥자’ 미술팀 막내 등 틈틈이 상업영화 현장에서 일하며 친구들의 단편 촬영을 돕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엘린 윤 감독의 단편 '키메라'. CAAMfest 홈페이지에서 23일까지 볼 수 있다. [사진 CAAMfest]

한국계 미국인 엘린 윤 감독의 단편 '키메라'. CAAMfest 홈페이지에서 23일까지 볼 수 있다. [사진 CAAMfest]

“요즘은 재미교포 친구가 한국에서 촬영할 단편 준비를 돕고 있어요.” 그는 마블 히어로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한국 촬영 이후부터 해외 작품의 한국 로케이션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때 할리우드에 한국이란 나라가 괜찮다고 입소문이 났나 봐요. 밴쿠버 학교 다닐 때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K팝에 관해 묻는 친구가 많았어요. ‘레드벨벳’ 슬기 아느냐고 묻고(웃음). 확실히 피부로 체감이 될 정도로 지금 한국이 ‘핫’하지 않나, 해요.”

‘봉봉픽쳐스’(@lllBONGBONGlllPICTURESlll)란 인스타그램 계정을 소개한 그는 좋아하는 자동차 소재도 다뤄보려 한다고 했다. “좀 현실적인 ‘매드맥스’라고 할까요. ‘아파트’로 조금 연습했죠. 언젠가 자동차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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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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