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랑꾼에 속아 13억 날렸다, 이런 흑역사 책으로 낸 여자

중앙일보

입력 2021.05.21 05:00

업데이트 2021.05.21 10:51

50대에 이혼했던 한 영국 여성이 있었다. 외로웠던 여성은 우연히 알게 된 한 남성에 반해 결혼까지 약속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이 남성은 알고 보니 영국 정보기관 MI6의 비밀 공작원을 사칭한 사기꾼이었다.

여성은 남성에게 많은 돈을 털리고 한때 세상을 등질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자기를 속인 결혼사기범을 가만두기엔 억울했다. 여성은 비슷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흑역사'를 『사이코패스와의 동침(Sleeping with a Psychopath)』이란 책으로 펴냈다. 아마존 홈페이지에 따르면 피해 여성 캐롤린 우즈(63)의 회고록은 지난달 29일 발간돼 법 집행 전기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사기꾼에게 호되게 당한 우즈의 기막힌 사연을 영국 더 선(The sun)과 미러 등이 보도했다.

영국에서 한 여성이 영국 정보요원을 사칭한 남성에게 속아 막대한 금품을 넘겼던 자신의 '흑역사'를 책으로 냈다. [아마존 홈페이지]

영국에서 한 여성이 영국 정보요원을 사칭한 남성에게 속아 막대한 금품을 넘겼던 자신의 '흑역사'를 책으로 냈다. [아마존 홈페이지]

2012년 우즈는 이혼했다. 두 딸 역시 성인이 돼 독립한 뒤였다. 그해 우즈가 일하던 의류매장에 한 신사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46세 이혼남이며 스위스 은행에서 일하는 마크 콘웨이라고 소개했다.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즈가 지은 책은 법 집행 전기(Law enforcement Biographies)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우즈가 지은 책은 법 집행 전기(Law enforcement Biographies)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잘 풀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음 날 저녁 식사도 함께했다. 우즈는 만난 지 이틀 만에 사랑 고백을 받았다. 나흘째에는 저택 앞에서 달콤한 말을 들었다. "당신과 살기 위해 이런 집을 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마크 콘웨이는 사실 마크 아크롬이었다. 그는 영국 국가범죄대책청의 10대 도망자 수배 명단에도 있던 인물이었다. [트위터]

마크 콘웨이는 사실 마크 아크롬이었다. 그는 영국 국가범죄대책청의 10대 도망자 수배 명단에도 있던 인물이었다. [트위터]

교제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지만, 남성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즈가 콘웨이에게 따지자 남성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사실 MI6에서 영국 첩보원 노릇을 하고 있다. 스위스 은행에서 일한다는 건 거짓이다"라는 말이었다. 이어 콘웨이는 "MI6에 연애는 금물이다. 결혼하려면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퇴직까지 1년 반이 걸리는데 그때까지만 결혼을 기다려 줬으면 한다는 간청도 했다. 그러면서 콘웨이는 같이 살 집의 리모델링 비용이 필요하다며 우즈에게 2만6000파운드(4155만원)를 빌렸다. 우즈는 그 후 몇 달간 70여 차례나 돈을 꿔줬다. 꿔준 돈의 액수는 약 85만 파운드(13억5800만원)에 달했다.

캐롤린 우즈(사진)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일을 실제로 겪었다고 고백했다. [유튜브]

캐롤린 우즈(사진)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일을 실제로 겪었다고 고백했다. [유튜브]

자신이 MI6 요원임을 과시하듯 콘웨이는 우즈를 '개인 비행장'으로 데려가 개인 비행기도 태워줬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비행장은 다른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다.

콘웨이와 종종 연락되지 않아 괴로워하던 우즈는 비행장에서 만났던 제임스라는 사람을 떠올리고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는 콘웨이가 벌인 사기행각의 전모를 듣게 됐다.

마크 아크롬의 위조된 신분증. [트위터]

마크 아크롬의 위조된 신분증. [트위터]

콘웨이의 진짜 성(姓)은 아크롬이었다.

아크롬은 16세부터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훔치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 그는 사기죄로 스페인에서 수감됐다 풀려난 적도 있었다. 스페인 여성과 결혼해 2명의 아이도 뒀지만, 우즈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아크롬은 자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안다고 말하고 다니며 사람들의 혼을 빼놓기도 했다.

사기꾼의 존재를 알아챈 우즈는 영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영국 법정에 아크롬을 세우는 데는 6년이 걸렸다. 그가 스위스로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영국 국가 범죄 대책청의 10대 도망자 수배 명단에 오르면서 수사망이 좁혀졌다. 결국 아크롬은 스위스에서 체포돼 2019년 2월 영국으로 송환됐다.

아크롬은 스위스에서도 사기 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해럴드 헤르본이란 남성은 아크롬의 회사가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의 지원을 받는다"는 말에 속아 투자를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 뒤 아크롬은 총 5건의 사기가 유죄로 판명돼 징역 5년 8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우즈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제임스 본드처럼 굴었던 남자에게 속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고 털어놨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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