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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대학 문 닫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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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교육부가 부실대학 퇴출에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 지방대에서 신입생 미달 사태가 대거 발생한 것이 주원인이다. 계속 운영이 어려운 대학에는 폐교 명령을, 일반 대학에는 재정 지원을 내걸어 정원 감축을 유도한다.

교육부, 올 4만명 미달 사태 대책 #재정 3단계 분류…폐교 명령 가능 #5개 권역별로 다른 충원율 제시 #평가 하위 30~50% 대학 정원 감축 #“서울과 묶인 경기·인천 대학 불리” #폐교 요건·절차 등 하반기 발표

교육부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체계적 대학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대학의 재정 수준을 진단해 위기에 처한 대학을 ‘위험대학’으로 분류하고 회생이 불가능한 곳은 폐교시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분류 기준은 하반기에 구체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나, 임금체불·자금 유동성 등을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특단의 조치가 나온 이유는 학생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대학 충원율(정원 대비 실제 입학 인원)은 97~98% 수준을 유지했지만 올해 91.4%로 뚝 떨어졌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올해 전체 미충원 인원(4만586명) 중 3만458명(75%)이 비수도권으로, 지방대의 위기가 더 심각하다.

교육부는 위기 수준에 따라 대학을 1·2·3단계로 나눈다. 2단계까지는 자생력이 있다고 보고 기회를 주지만, 3단계(위험대학)는 폐교 명령까지 가능하다. 학교 측이 자진 폐교하기를 원할 경우 필요 요건과 절차 등도 하반기에 마련할 계획이다.

‘비위험 대학’은 자율적으로 정원을 감축할 기회를 주되, 권역별로 유지해야 할 충원율을 정해 미달하면 정원을 줄이도록 한다. 바로 ‘기준 유지 충원율’이다.

수도권 대학도 정원 감축 … 경기·인천 “지방대 위기 떠넘기나”

교육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대학은 내년 3월까지 적정 규모화를 포함한 자율혁신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 계획을 받고 난 뒤 대학들을 5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지켜야 하는 ‘기준 유지충원율’을 제시한다.

학령인구 감소 따른 위험대학 시정조치안

학령인구 감소 따른 위험대학 시정조치안

정종철 교육부 차관은 이날 “유지충원율은 지역 차이를 고려해 권역별로 정원 감축을 차등 권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일반 재정지원이 중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원 감축이 권고되는 대학은 권역별로 하위 30~50%다. 권고에 따르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중단하기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적인 조치다.

교육부는 전국 대학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 권역별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송근현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장은 “미달 대학 대다수가 지방대일 텐데, 전국에 동일 기준을 제시하면 공정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준 유지 충원율’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송근현 과장은 “신입생 충원율뿐 아니라 재학생 충원율도 고려해 만들겠다”고 했다. 등록만 해놓고 중도 이탈하는 학생도 많기 때문에 재학생 수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도 살펴보겠단 뜻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 충원에 큰 어려움이 없는 수도권 대학들도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수도권 일반대학 충원율은 평균 99.2%에 달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하위 30~50%는 감축 대상이 될 수 있다. 전국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대부분 미달 사태를 겪는 지방대가 정원 감축 대상이 되겠지만, 권역별로 기준을 달리해 수도권도 정원 감축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취지다.

대학 미충원 인원, 3년새 5배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학 미충원 인원, 3년새 5배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각에서는 지방의 부실대학 문제를 수도권 우수 대학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종철 차관은 “이번 방안은 국가와 지역의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대학들은 학부보다는 대학원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며 “수도권 대학에 과도하게 학생이 집중되는 현실은 수도권 대학 총장들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서울 소재 대형 대학들이 정원을 줄이게 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으로 묶어 하위 대학의 정원을 줄일 경우 서울 대형 대학들은 감축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서울은 함께 묶인 경기·인천보다 사정이 좋으니 정원을 줄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면서 “등록금 인상을 허용해 주지 않는다면 나서서 정원을 줄일 서울 소재 대학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남의 한 대학 관계자도 “서울에 있는 거대한 대학의 규모를 줄여야 인재 블랙홀 현상을 막을 수 있는데, 수도권으로 묶어 규제하면 사실상 경기·인천 대학들만 고사시킬 것”이라며 “서울을 따로 떼어 평가해야 지방대도 지역의 뛰어난 학생을 유치할 수 있다”고 했다.

기준에 미달한 권역 내 하위 30~50% 대학만 감축하는 건 서열화를 가속하고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대학 위기에 선별 감축 꺼낸 교육부’란 제목의 논평을 내고 “수도권까지 모든 대학을 일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교육부 대답은 선별 감축이다”면서 “대학 서열대로 감축이 예상된다”고 비판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육부는 학부 정원을 줄여 대학원 정원을 늘리게 하는 식의 대책도 함께 추진한다. 현재는 학부 정원 1.5명을 줄이면 석사과정 1명을 늘릴 수 있는데, 이 비율을 바꿔 학부 정원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다. 정원을 늘릴 수 있는 대학원엔 전문대학원도 포함된다. 단 의학·법학전문대학원은 예외다.

한편 교육부는 이날 정부 재정 지원 제한 대학 18개교도 발표했다. 경주대·금강대·대구예술대·신경대·제주국제대·한국국제대·한려대·서울기독대·예원예술대의 일반대학 9개교와 강원관광대·고구려대·광양보건대·대덕대·영남외국어대·웅지세무대·두원공과대·부산과기대·서라벌대의 전문대학 9개교다. 내년부터 이 대학에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신·편입생)은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에 제한을 받는다.

대학 신입생 충원율 양극화 심화…서울 99% 경남 85%

올해 지방대 신입생 충원율이 최대 10%포인트 이상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서울·경기 지역 대학들은 모집 인원의 100%에 육박하는 신입생을 뽑아 지역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20일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2021학년도 대학 신입생 충원율’ 자료에 따르면 경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85%를 기록했다. 이어 경북(88.1%), 강원(89.2%), 전북(89.3%), 전남(89.6%) 순으로 충원율이 낮았다. 경남과 전북·강원은 전년 대비 10%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지방 국공립대 4곳도 충원율이 90%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에 서울권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99.5%로 지난해(99.6%)와 차이가 없었다. 경기는 0.6%포인트 감소한 98.5%, 인천은 1.2%포인트 줄어든 98.7%다.

문현경·남궁민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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