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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자마자 '○○녀' 검색…수년째 반복되는 '악몽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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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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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떨리는 심정으로 자신의 별칭을 검색창에 입력한다. ‘○○녀’. 옛 남자 친구와의 성관계 동영상이 불법 유포된 사건은 그녀의 일상은 바꿔놨다.

[취재일기]

영상을 검색하고 절망하는 악순환은 언제 끝날까. 지우고 또 지웠지만, ‘○○녀' 제목이 붙은 영상이 언제 다시 인터넷에 올라올까 불안하다. 밤사이 자신의 얼굴이 나온 영상을 누군가 다시 업로드할지 모른다는 노심초사는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겪는 일상이다.

지난 14일 영상 유포 피해자가 전 남자친구 이모(31)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판결(서울북부지법)을 받아 냈다. 법원은 전 남자 친구에게 유포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유포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인정했다. 손해배상액은 3000만원. 영상 유포 이후 민사소송 1심 승소까지 3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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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승소를 끌어낸 김수윤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영상 유포 피해 여성들의 참담한 속사정을 이렇게 전했다. “피해자들이 증거자료로 영상 링크나 캡처를 보내올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누구한테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니 눈물을 머금고 직접 검색했다는 걸 알거든요."

‘○○녀’ 피해 여성은 “떠돌아다니는 영상을 찾아 지우며,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이를 많이 먹고 할머니 정도가 된다면 조금은 무뎌지고 괜찮아질까요”라고 김 변호사에게 묻기도 했다고 한다.

3000만원 배상 판결이 의미가 있는 건 피해 여성이 3년 만에 처음 경험한 승리여서다. 유포자를 처벌하고 싶었지만, 1년 넘게 이어진 수사 결과는 “유포자를 찾을 수 없다. 전 남자친구가 유포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였다. 전 남친은 검찰에서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여성을 속이고 영상을 저장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검찰은 불기소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은 면죄부가 됐다.

김 변호사는 “최초 유포자를 찾아달라고 신고했지만, 전 남친은 무혐의를 받았고 불법 촬영물 삭제를 요청받고도 지우지 않은 104개 사이트를 고발한 사건에서도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사가 중단됐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피해자는 또다시 질까 봐 두렵고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2019년엔 525명, 지난해엔 1808명의 동영상 삭제를 지원했다. 지난해 삭제한 영상 수는 15만8760건이다.

피해 여성들이 ‘잊힐 권리’를 누리기엔 현실은 천박하고 척박하다. 유사 사건을 여러 차례 담당한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피해자들의 일과는 비슷하다. 눈을 뜨면 검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고소를 하면 ‘얼마나 피해를 봤느냐’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자신의 영상이 퍼졌다는 것을 많이 찾아야 가해자를 처벌할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자신에게 2018년에 사건을 의뢰했던 한 여대생은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직후 대학 게시판에 성관계 사진이 올라온 사건의 피해자다. 그 남성은 유포와 협박 혐의로 처벌을 받았지만, 여대생은 아직도 3년 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상 유포 피해 여성들의 끔찍한 하루는 반복되고 있다.

정진호 사회2팀 기자

정진호 사회2팀 기자

정진호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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