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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고속도로' '해운대 야경'이 그의 열정에서…'아파트 장인(匠人)' 김언식 회장

중앙일보

입력

김언식 DSD삼호 회장이 10일 서울 강서구 한 모형제작 업체에서 경기도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분양 현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언식 DSD삼호 회장이 10일 서울 강서구 한 모형제작 업체에서 경기도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분양 현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DSD삼호 김언식(67)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부동산 디벨로퍼다. 디벨로퍼는 땅을 매입해 아파트 단지 조성 등의 부동산 개발사업(시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땅 매입부터 기획·인허가·설계·금융·마케팅·사후관리까지 아파트를 짓는 시공 작업을 제외한 사업 전반을 아우른다. 그래서 김 회장은 “디벨로퍼는 시나리오(플랜)를 짜고, 배우와 극본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한 편의 영화를 창조하는 영화감독과 같다”고 말한다.

1980년 '삼호주택'을 설립해 주택 사업에 뛰어든 김언식 회장은 1991년 경기 수원시 화서동의 화서 벽산(238가구)아파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디벨로퍼의 길을 걷게 됐다.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수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40년 넘게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켰다. 그가 지은 용인시 수지 LG빌리지, 부산시 해운대 대우트럼프월드 마린, 고양 식사지구 일산자이 등 모두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로 꼽힌다. DSD삼호는 지난해까지 4만여 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위례신도시(4만2000여 가구)와 맞먹는 아파트가 그를 통해 공급됐다.

김언식 DSD삼호 회장이 10일 서울 강서구 한 모형제작 업체에서 경기도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분양 현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언식 DSD삼호 회장이 10일 서울 강서구 한 모형제작 업체에서 경기도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분양 현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그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분양하는 공공택지 개발사업은 하지 않는다. 남이 조성한 택지에 아파트를 짓는 건 디벨로퍼의 일이 아니라는 철학 때문이다.  그는 "버려진 땅을 '꿈의 도시'로 직접 창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회사 이름 DSD(Dream Space Developer)에서부터 그의 포부가 담겨 있다.

김 회장에게 경기 고양시 식사지구에서 2007년 분양을 시작한 위시티 일산자이가 그런 존재다. 무허가 가구공장이 난립해 밤이 되면 공권력도 포기할 정도의 무법천지였던 그곳이 김 회장의 노력으로 1만여 가구의 미니신도시로 변신했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에 따라 이곳 조경비용만 600억원을 썼다. 보통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 조경비는 60억원 안팎이다. 김 회장은 조경에 쓸 소나무를 전국에서 2500그루 사들였고, 직접 식재할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조경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일산자이는 2011년 세계 조경가대회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곳을 "애증의 아파트"라고 표현한다. 그의 계획대로 명품 아파트 단지가 탄생했지만, 손익 면에서 김 회장의 ‘유일한 1패''가 됐기 때문이다. 분양 당시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분양이 쌓였다. 사업비의 20%가 넘는 8000억원가량을 손해 봤다. 회사 인력을 절반 넘게 구조조정을 하고 빌딩 3개를 매각해 힘겹게 버텼다.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됐다. 이어 분양한 '일산 자이 2·3차'는 물론 힐스테이트 태전, 동천자이 등 선보이는 단지마다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완판'에 성공했다.

2007년 준공한 해운대 대우트럼프월드 마린도 그가 꼽는 대표작이다. 사업 추진 당시 부산 해운대 일대는 15층 이상 아파트 인허가가 나지 않았다. 김 회장은 부산 공무원들을 직접 찾아가 홍콩 마천루 사진을 보여주며 "부산을 홍콩처럼 만들어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해 42층 건물을 탄생시켰다. 국제적 명소가 된 해운대 야경의 시작이었다.

그는 아파트 부지 선정에 있어 ‘도심 30분 거리’라는 명확한 원칙을 갖고 있다. 서울 도심 30분 거리 이내는 주택 수요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북쪽으로 고양, 남쪽으로 용인, 화성 등이 한계다. 김 회장의 사업장도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김 회장은 인구학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에게 컨설팅을 의뢰해 "2035년까지 수도권과 서울 인구는 줄지 않지만, 지방은 괴멸 수준의 축소가 예상된다"는 답을 얻었다. 김 회장은 "수도권에서도 교통망 부재 등으로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는 신도시는 낙후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 전경. [중앙포토]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 전경. [중앙포토]

용인·수원·성남 등 경기 남부권을 강남으로 연결한 용인-서울 고속도로(용서고속도로)에도 그의 통찰력이 담겨 있다. 용서고속도로는 1시간이 걸리던 용인에서 서울까지의 소요시간을 25분대로 크게 단축했다. 김 회장은 "김대중 정권 당시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과의 친분으로 용서고속도로의 최초 구상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며 "경부고속도로의 혼잡을 줄일 수 있고, 용인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언식 DSD삼호 회장이 10일 서울 강서구 한 모형제작 업체에서 경기도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분양 현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언식 DSD삼호 회장이 10일 서울 강서구 한 모형제작 업체에서 경기도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분양 현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DSD삼호가 경기 화성시 봉담읍 내리지구에서 이달 분양하는 '봉담 프라이드시티'는 국내 아파트 브랜드 선호 수위를 다투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GS건설 자이의 경연장이다. '봉담 프라이드시티'는 4034가구의 대단지가 2개 블록으로 조성되는데, 1블록은 GS건설, 2블록은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는다. 입주 후 아파트 시설에 따라 집값 등에서 우열이 갈리는 탓에 두 대형건설사의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이 치열하다. 지난달 22일 국토교통부의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신분당선 호매실~봉담 노선 구간이 반영되면서 이 지역 서울 강남권 접근성도 개선된다. '도심 30분 거리'라는 김 회장의 철학과도 맞다.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들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을 장인(匠人)이라고 부른다. 40년 외길의 '아파트 장인' 김 회장은 "학교·공원·문화시설·병원·식문화 공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멀티플렉스 단지를 늘 추구해왔다"며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한 번 더 해보는 것이 장인의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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