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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적자에 인형 팔던 서울지하철…'역명 광고' 부활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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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명 아래 원광디지털대라고 부역명을 표기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사진 서울시]

역명 아래 원광디지털대라고 부역명을 표기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사진 서울시]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5년 만에 역명병기 사업을 재추진한다. 1조원 이상 적자를 기록할 만큼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나온 대책 중 하나다. 공사는 광고수익 사업 외에도 큰 틀에서 인력 감축, 예산 긴축운영 등의 방안을 서울시에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개적으로 “경영합리화를 성의 있게 하지 않았다”며 강도높은 자구책 마련을 지시한 상황이다.

서울교통공사는 20일 올 하반기부터 서울 지하철 1~8호선 내 5곳 이상 역사를 대상으로 역명병기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역명병기는 지하철 역명 옆이나 아래 부(副)역명을 더해 표기하는 것을 말한다. 공사의 전신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2016·2017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듬해 합병 이후엔 이번이 처음이다.

연 4억원이라도…“수익 끌어내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재정이 매우 어려운 만큼 어떻게든 수익을 끌어내보자는 것”이라며 “역 주변 업체나 기관에서 홍보 목적으로 역에 이름을 넣어달라는 민원이 종종 들어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역명병기 된 서울 지하철역은 26곳이다. 공사에 따르면 2017년 1호선 종각역 부역명이 된 SC제일은행은 브랜드 인지도가 3%가량 상승했다고 판단해 2020년 재계약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자구노력 방안

◇인력 감축: 202억원(318명)
▶심야 연장운행 폐지
▶2021년 잔여 퇴직인원 신규채용 40% 축소
◇임금 동결과 평가급 미지급: 1702억원
◇예산 긴축운영: 3292억원
▶경비 등 편성금액 대비 감축 집행
▶자본투자비  편성금액 대비 감축 집행
▶사무관리비 등 운영경비 절감
▶휴양소 지원비 삭감 등 복리후생 조정
▶촉진연차 추가 및 보상 중지
▶투자사업 재분석과 우선순위 조정
◇추가 수익창출: 110억원
▶광고수익 증대 노력
▶상가 등 공간개발

자료: 성중기 의원실, 서울교통공사
*4월 말 기준,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논의중

서울교통공사 자구 방안 일부. 역명병기 사업 확대도 포함돼 있다. [자료 성중기 의원실]

서울교통공사 자구 방안 일부. 역명병기 사업 확대도 포함돼 있다. [자료 성중기 의원실]

역명병기 기관·회사는 공개 입찰로 정하는데 대상 역에서 1㎞ 안에 있어야 하며 500m 이내인 곳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낙찰되면 3년 동안 원하는 기관명을 부역명으로 표기할 수 있으며 재입찰 없이 한 번(3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응찰금액은 역별로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 역당 1년에 8000만원 정도다. 응찰금액이 같으면 공익기관·학교·병원·기업체·다중이용시설 순으로 결정한다. 공사는 2호선 역삼역과 2·5호선 을지로4가역을 대상 역으로 우선 선정했다고 밝혔다.

역삼역·을지로4가역 우선 대상

역명병기 사업은 공사의 자구 방안에 포함되지만, 전체 광고수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성중기 의원(국민의힘·강남1)에 따르면 공사는 올해 부족자금으로 1조5991억원을 전망했으며 공사채 발행으로 1조2000억원, 자구 노력으로 5324억원을 확보하겠다고 대책을 세웠다(서울교통공사 자구방안 추진계획). 광고수익 예상액은 연 34억원으로 이 가운데 역명병기 사업 수익은 4억원이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역명병기 사업을 두고 “공사 재정난 극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김 사장은 지난 4월 1일에는 5호선 광화문역에서 ‘인형 판매’ 행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당시 공사는 만우절을 맞아 ‘내일 지하철이 멈출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도와달라’ 등의 문구를 내걸고 서울 지하철 캐릭터인 또타 인형을 팔았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지난달 1일 서울 세종대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공사 캐릭터 '또타'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뉴스1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지난달 1일 서울 세종대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공사 캐릭터 '또타'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공사의 당기순손실은 1조1137억원으로 전년(5865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공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승객 감소로 4515억원의 운송수입이 준 데다, 고령층 무임수송 손실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서울시에는 요금 인상, 무임수송·운영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양 공사 합병 이후 경영합리화를 성의 있게 해오지 않았다”며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바람직한 진전이 없어 다시 한번 노력해 줄 것을 주문해 놨다”고 말했다.

적자 1조6000억 예상, 5월 말 새 자구안 계획
공사는 5월 말쯤 서울시에 새로운 자구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성중기 의원은 “서울교통공사가 마치 애물단지처럼 됐지만 본래 수익 창출보다 대중교통 편의 제공을 위한 기관인 만큼 고령층 무임수송 손실은 정부가 서울시에 넘기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며 “공사 역시 퇴직 임원이 자회사로 옮기는 관행 등을 타파해 외부에서 인정할 수 있는 자구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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