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혐오의 평범성, 함께 저항하고 넘어서야

중앙일보

입력 2021.05.2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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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나의 고백을 해야겠다. 나는 성소수자를 혐오했던 사람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대학원 수업의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을 ‘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 건너편에 앉은 한 남자 학생이다. 게이라니! 큰 충격이었다. 나는 속으로 저 ‘이상한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오기 전 나는 한국이나 독일에서 성소수자를 만난 적도,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물론 그 당시 내가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혐오란 누군가를 열등하고, 비정상이며,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되돌아보니 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성소수자 혐오를 했던 것이다.

열등·비정상이라는 생각
타자에 대한 혐오의 시작
평범한 나·우리 안의 혐오
함께 저항하고 변화해야

그런데 내 속의 그 혐오를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휴식 시간에 그가 ‘하이 남순’ 하고 다가와 말을 건넸다. 내가 성소수자 혐오를 했던 것처럼 그가 ‘외국인 혐오자’였다면, 내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로소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학기를 함께 보내면서 나는 그가 나와 똑같은 평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 보편 진리를 내가 그제야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성적 지향에 대한 복잡한 이론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과의 만남이 내 속에 은닉되어 있던 혐오를 끄집어내어 버리도록 만들었다.

2005년부터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로 세계 130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지켜지고 있다. ‘5월 17일’로 정한 것은,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21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해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국무부 장관은 성명을 발표했다. 두 성명서는 유엔을 인용하면서, 모든 성소수자들이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평등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기념일들이 있다. 어린이날, 여성의 날, 노인의 날, 장애인의 날,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등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정된 날에 호명되는 이들은 누구인가. 각기 다른 범주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사회의 주변부인이라는 점이다. 특별하게 호명되고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다. 중심부에 있는 이들은 굳이 특별한 관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점에서, 한 사회의 중심부를 이루는 이들의 헤게모니는 특별한 표지의 부재로 유지된다. 중심부에 있는 이들은 굳이 이렇게 특별한 날에 호명될 필요가 없기에 그 어떤 특별 표지가 없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 ‘여성’이 아닌 남성,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성소수자’가 아닌 이성애자 등과 같은 이들은 중심부에 있기에 혐오, 소외, 차별, 배제를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부에 있는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혐오란 무엇인가. 흔히 혐오는 노골적인 양태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특정한 그룹의 사람에 대한 혐오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게 은밀하게 작동한다. 노골적이지 않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하지만, 은밀한 혐오는 노골적인 혐오처럼 강력한 차별과 배제의 기능을 한다. 혐오는 특정한 사람들이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며, 더 나아가서 위험하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악하고 나쁜’ 사람들만 타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혐오를 하며, 그 혐오를 확산하곤 한다. 혐오의 평범성이다.

한국에서 가장 노골적인 혐오가 적용되는 대상 중의 하나는 성소수자들이다. 성소수자를 이성애자보다 뭔가 열등하고, 비정상이고, 더 나아가서 가정, 사회, 종교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혐오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숨 쉬고 살아가기조차 어려운 곳이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가정, 사회, 직장, 군대, 교회, 또는 학교에서 2등 인간으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살고 있다. 한국사회의 가장자리 절벽 끝으로 밀려난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성소수자다. 하다못해 그들과 연대하는 이들조차도 대학에서, 교회에서 추방당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를 혐오하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타자에 대한 혐오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인간됨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 타자가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그들에 대한 혐오는 자신을 먼저 파괴한다. 2021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의 주제는 “함께: 저항하고, 지지하고 치유하기”다.  우선 나·우리 안의 혐오에 ‘저항’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지’하고, 혐오로 인해 만들어진 상처는 물론 나·우리 속의 상처를 ‘함께’ ‘치유’해야 함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든,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든 모든 인간은 존엄성과 평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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