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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만 싱글즈의 경쾌한 반란 ‘독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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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독립한 이유요? 가족들과 반려묘 키우는 방식이 달랐어요.”

직장인 염모(27·경기 일산시)씨가 최근 중앙일보의 ‘싱글즈’ 취재팀에 전한 말이다. 가족과 양육방식이 달라 고양이를 잃어버릴 뻔한 게 독립심을 부추겼단다. 그렇게 4년 전 세대주가 된 염씨는 일산 집과 서울 강남의 직장을 오가며 ‘싱글’로 산다.

국내 ‘1인세대’가 900만 명을 넘어섰다. 마치 세포분열처럼 홀로 사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국내 총 2309만 세대 중 39%(906만 세대)가 1인세대로 산다. 국내 10세대 중 4세대는 홀로 세대를 꾸린 싱글세대라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 인구가 첫 감소세를 보인 상황에서도 유독 1인세대 증가세는 가팔랐다.

싱글즈 급증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역대급 독립선언이 배경이다. 자신만의 공간이나 시간, 정서적 독립, 심리적 자유 등이 독립의 주된 이유다. 과거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가 대학 진학이나 취업, 결혼 등의 순서로 독립을 한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1인세대가 매년 급증하는 강원도 양양군의 해변에서 한 서퍼가 서핑을 하고 있다. [사진 양양군]

1인세대가 매년 급증하는 강원도 양양군의 해변에서 한 서퍼가 서핑을 하고 있다. [사진 양양군]

세대분화 추세에 최근 기름을 끼얹은 건 단연 집값 문제다. 아파트 청약 등을 위해 젊은 자녀를 세대주로 만드는 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국내 1인세대 숫자가 ‘실제로 혼자 사는’ 1인가구보다 234만 명(25%)이나 많은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한 지붕 두 세대’는 수도권이나 일부 지방 도시의 집값 폭등 상황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처럼 여겨진다. 무주택 세대주에게는 공공주택 청약 자격이 주어지고 민간분양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매입자 가운데 30대 이하 비중은 44%에 달했다. 2년 전인 2019년 1월(29%)보다 15%포인트 뛰었다.

이 상황을 참다못한 상당수 청춘들은 셰어하우스 같은 공동주택으로 눈을 돌린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한다는 ‘영끌’이 되기보단 거주비용이 저렴한 곳을 찾는 현상이다. 이들은 한 공간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돼준다는 점에서 ‘두 번째 식구’라고도 부른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720여 개이던 셰어하우스는 2019년엔 7300여 개로 5년 새 10배가량 불어났다.

아예 집값이 저렴한 지방 도시로 떠나는 싱글들도 느는 추세다. 자연 여건이 빼어난 강원도나 제주도 등에 서울 토박이들이 홀로 둥지를 트는 게 대표적이다. 미세먼지나 환경오염을 피해 강원도를 찾은 일부 싱글은 서핑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

독립한 이유나 사연은 다르지만 싱글즈의 한결같은 외침이 있다. “국가로부터 도움받는 게 전혀 없다”라는 말이다. 1인세대·1인가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정부 정책은 결혼·출산 등 전통적인 가족관에만 얽매여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생각이 진화해야 900만 싱글즈의 홀로서기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최경호 내셔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