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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생태계…불도저식 추진한 '수소경제 로드맵' 명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전용차로 도입한 수소차(넥쏘)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전용차로 도입한 수소차(넥쏘)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정부 주요 경제 정책 중 하나인 ‘수소경제 로드맵’이 태동한 건 2018년 8월이었다.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그리고 수소경제를 혁신성장의 3대 전략투자 분야로 선정하면서다. 다음 해 1월 로드맵을 발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넉 달 남짓. 당시 갓 취임한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소경제 태스크포스(TF)를 맡은 신성필 에너지신산업과장(현 김앤장 전문위원)을 불러 “수소차로만 범위를 좁히지 말고 ‘수소경제’란 이름에 걸맞게 수소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로드맵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과제를 넘겨받은 신 전 과장은 막막했다. 먼저 일본ㆍ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에서 참고할 만한 로드맵이 마땅찮았다. 기술 수준부터 인프라, 규제 환경까지 각국이 처한 환경이 너무 달랐다. 게다가 한국은 당시만 해도 수소 에너지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전혀 없었다. 신 전 과장은 “그나마 알려진 태양광ㆍ풍력과 달리 수소는 이름만 나와도 ‘수소 폭탄’을 언급할 정도로 분위기가 적대적이었다”며 “안전성 우려부터 불식시키고 최대한 현실과 밀착한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학계는 물론 기업 50여 곳 등 민간과 TF를 꾸려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TF는 연말연시 연휴까지 반납한 끝에 2019년 1월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소차ㆍ충전소 보급을 늘리고, 수소 연료전지 발전을 확산시키고, 수소 생산을 늘리는 등 기업과 힘을 합쳐 국내에 ‘수소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핵심이었다. 해당 분야에 예산을 지원하고, 수소경제 펀드를 조성해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신 전 과장은 “로드맵이 구체적이고, 국내 기술의 수준을 드러내는 부분도 많아 경쟁국에서 베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며 “생태계를 키우려면 선진국이 따라오더라도 일단 정부 주도로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은 종종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발표한 ‘수소경제 마스터플랜’과 비교된다. 마스터플랜은 2020년까지 국내 수소차 보급을 200만대로 추정하는 등 장밋빛 중장기 전망으로 채웠지만 불발했다. 예를 들어 수소차를 원활히 굴리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연료인 수소를 충분히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 불확실성이 큰 초기에 자발적으로 수소 생산에 뛰어들 업체를 찾기 어렵다. 당시 마스터플랜엔 수소 생산에 대한 전략이 부족했다.

2019년 1월 만든 로드맵엔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를 중심으로 수소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목표로 가는 ‘수단’부터 분명하게 가다듬은 셈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창원시와 광주광역시에 거점형 수소 생산기지를 구축했으며, 내년 하반기부터 수소를 생산한다.

신 전 과장에 이어 수소경제 주무를 맡은 최연우 과장은 “정부가 수소경제를 다 할 수 없고, 결국 주체는 기업이란 점에 주목해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현대차 같은 수소차 제조사뿐 아니라 정유사 등 수소를 만드는 기업이 대대적으로 뛰어들게 한 게 성과”라고 평가했다.

출발선은 잘 끊었다는 평가다. 문상진 두산퓨얼셀 상무는 “일본ㆍ미국 등 주요국이 막 수소경제를 추진하던 2019년 당시 정부가 치고 나가지 않았다면 1~2년이 아니라 5~6년은 늦어졌을 것”이라며 “다소 무모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밑그림을 잘 그렸다”고 분석했다. 이승훈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본부장은 “수소경제가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대안 중 하나로 인정받는 수준까지 성장하도록 하는데 정부 역할이 컸다는 데는 국내외 정부ㆍ산업계가 동의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세운 ‘수소경제’ 2주년 성과.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부가 내세운 ‘수소경제’ 2주년 성과.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처음 마중물을 붓긴 했지만, 여전히 장밋빛 전망에 기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소차 판매만 해도 한대당 수천만 원씩 지원금을 쏟아붓는다. 지난해 말까지 보급한 수소충전소도 70기 수준에 불과하다. 한 대기업의 수소연료전지 담당 임원은 “정부가 본격적으로 로드맵을 추진한 지 3년 차라 보급ㆍ인프라가 부족하고, 산업 규모도 작아 숫자가 늘어도 민망한 성과”라며 “처음이야 큰 틀에서 로드맵을 그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정부 역할이었다면, 이제 객관적인 수요 예측 등 백데이터에 근거해 디테일한 성공 전략을 짤 때”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밑그림을 그린대로 ‘수소 생태계’를 완성하려면 ‘그린 수소’ 생산 등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는 부분에 성패가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경 연구위원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식의 일회성, 대규모 지원이 아니라 정부가 바뀌더라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물고기를 잡는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며 “반도체 산업을 참고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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