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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정세균 띄우자 이재명 일축…與 개헌논쟁 숨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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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제 우리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개헌에 나설 때가 됐다.” (지난 16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우리 국민들의 구휼미 띠집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지난 18일, 이재명 경기지사)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전후해 여권 대선 주자 사이에 개헌 논쟁이 불붙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8일 페이스북에 “저는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에서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개헌을 제안 드렸다. 핵심은 국민 기본권 강화와 불평등 완화를 위한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반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오후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께서 먹고사는 문제로, 집 문제로, 취직 문제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며 개헌 주장을 일축했다. 이 지사는 개헌을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에 빗대며 “국민들의 구휼미, 띠집(풀로 지붕을 만든 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선 경선을 준비 중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 역시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입법·행정·사법 영역 간의 분권 ▶대통령 권한의 슬림화 등을 골자로 하는 ‘분권형 개헌’을 주장한 상태다. 여권 일각에선 “개헌론이 대선 경선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文 “헌법 전문 5·18 명시”…野도 최근 찬성론

난데없는 개헌 논쟁이 하필이면 ‘5월 광주’에서 불거진 건 무엇 때문일까. 발단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에 내놓은 헌법 개정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대통령은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8년 3월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다. 이 개헌안 전문에는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을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바꾸는 내용이 포함됐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 유족의 초청으로 참석한 국민의힘 성일종(왼쪽), 정운천(오른쪽) 의원이 김병욱 민주당 의원(가운데)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 유족의 초청으로 참석한 국민의힘 성일종(왼쪽), 정운천(오른쪽) 의원이 김병욱 민주당 의원(가운데)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여권 정치인들은 매년 5월마다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명시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도 가세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은혜 의원은 17일 “개헌할 때 우리가 계승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산으로 4·19 옆에 5·18이 나란히 놓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5·18 추모제에 보수 정당 소속으로 처음 초청받은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도 “이미 당 정강·정책에 다 들어가 있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추격 주자의 승부수…“尹 개헌론 선점 막자” 주장도

‘5월 광주’가 개헌론의 촉매라면, 개헌론을 꺼낸 동력은 여권 대선 후보들의 이해관계였다. 민주당 대선 경선 시작이 1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재명 지사가 압도적인 여권 지지율 1위 후보여서다. 다음 달 초까지 변화가 없으면 이 지사의 우위 속에 경선 일정이 시작된다. “이낙연·정세균 캠프 입장에선 판을 흔드는 승부수가 필요했을 것”(민주당 수도권 의원)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8일 오후 5·18 민주묘지 민주의문 앞에서 참배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 지사는 이날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며 개헌론을 일축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8일 오후 5·18 민주묘지 민주의문 앞에서 참배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 지사는 이날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며 개헌론을 일축했다. 연합뉴스

다만 개헌론이 실제 경선 구도를 뒤흔들 수 있을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우선 지지율 1위 이재명 지사가 개헌 논의에 끌려들어 갈 의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의 개헌론에도 ‘개헌의 뇌관’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중임제나 책임 총리제 같은 권력구조 개혁이 빠졌다. 이 전 대표 측은 “기본권 강화, 불평등 완화라는 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당내 일각에선 “권력구조 없는 개헌은 앙꼬 빠진 찐빵”이란 냉소도 나온다.

이와 관련 여권 일각에선 “경선 후보들이 더 책임 있게 개헌 논의를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권력구조 개헌’을 고리로 중도층을 규합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취지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솔직히 지금 여야 대선 후보 가운데 국민이 100% 속 편하게 신뢰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필연적으로 과부하가 걸리는 대통령제를 수정·보완하지 않고서는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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