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리를 깔아줄 뿐, 그림은 절로 완성된다" 화가 최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5.19 12:34

업데이트 2021.05.19 15:23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최울가 작가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가나아트]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최울가 작가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가나아트]

"그림이 재미있어야죠. 다들 압박감 받으며 살고 있는데 그림까지 마음을 짓눌러서야 되겠어요?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최울가(65) 작가의 말이다. 강렬한 색채, 천진난만한 이미지의 화면으로 유명한 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재미있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화이트 블랙 레드 플러스(WHITE BLACK RED +)'라는 건조한 제목과는 달리 그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재미'와 '즐거움'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였다. "나는 돗자리 까는 역할만 했을 뿐 그림은 절로 완성된 것"이라고.

화면 가득 즉흥성과 자유로움
2007년 기존작품 200점 태워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개인전
회화부터 도자기까지 60여 점
"작가도, 보는 사람도 재밌어야"

이번 전시에서 그는 회화와 조각, 드로잉까지 총 60여점을 선보인다. 자신의 대표적인 화이트, 블랙, 레드 시리즈의 신작부터 최근 시작한 컬러 포인트(땡땡이) 시리즈도 함께 공개했다. 최근 작업하기 시작한 스티커 입체회화도 이번에 처음 선보였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의 그림마다 자주 등장하는 꽃과 어항, 눈동자, 물고기, 새 등의 기이한 이미지와 독특한 색채의 근원은 무엇일까. 자유스러워 보이지만 산만하지 않고, 절제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최 작가는 여기서 다시 자신의'돗자리'론을 꺼낸다. "작품 완성에 내 역할은 10%도 안 된다. 나는 블랙 앤 화이트, 레드 등의 바탕색으로 자리를 깔아줬을 뿐 각 조형과 이미지는 자기가 알아서 자리를 찾아간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대한 마음을 풀어놓고 즉흥적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기 전 동굴 벽에 다양한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했다"면서 "동굴벽화를 그리던 사람들처럼 비언어적인 이미지로 본능적인 감정과 원초적인 의식을 표현하고 싶은 내 바람이 여기 담겼다"고 덧붙였다.

Red Black Series ,Brooklyn Red-031, 2021, Oil on Canvas, 162.2x130.3cm.[사진 가나아트]

Red Black Series ,Brooklyn Red-031, 2021, Oil on Canvas, 162.2x130.3cm.[사진 가나아트]

최울가,White Fox, 2017, Mixed media on FRP, 121x68x22 cm.[사진 가나아트]

최울가,White Fox, 2017, Mixed media on FRP, 121x68x22 cm.[사진 가나아트]

그러나 그 안에는 치밀한 균형의 미학이 있다. 그는 "이른바 오방색이라 불리는 강렬한 원색으로 주로 그림을 그리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원색 주변에 다양한 중저색(어둡고 채도가 낮은 색채)을 배치한다"며 "그것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맘껏 뛰어놀게 하되 곳곳에 세이프가드(Safeguard·안전요원)를 배치해 아이들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라고 설명했다. 든든한 '조연'들이 자유분방한 '주연'을 받쳐주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그는 기존의 제한된 네모 캔버스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매체와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입체화한 세라믹조각과 스티커를 활용한 입체회화도 그중 하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시에선 그의 캔버스 속 이미지들을 활용한 애니메이션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재료든, 형식이든 테두리 안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 연작으로 뉴욕 화단의 주목을 받은 최울가는 현재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파리국립장식예술학교를 수료하고 베르사유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2000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라피티(graffiti)의 자유분방함과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56)의 개인전에서 본 실험적인 설치미술에서 충격을 받은 그는 2007년 이전 작품 200점을 모조리 불태우기도 했다. "벽을 부수는 일은 망치로 해선 안 된다.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이후 원시적이며 비언어적인 이미지로 현재의 즉흥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작업실의 최울가 작가. [사진 가나아트]

작업실의 최울가 작가. [사진 가나아트]

뉴욕의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리처드 바인은 최울가의 작품세계를 '맥락 속의 혼란(Chaos in Context)'으로 요약했다. 그는 "최울가의 그림은 언뜻 보면 매우 혼란스럽고 수수께끼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삶의 충만한 기쁨과 생명력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와 나누는 것 같다"고 썼다. 전시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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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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