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오후 한ㆍ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길에 오른다. 2017년 6월, 2018년 5월, 2019년 4월에 이어 4번째 양자 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방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다자회담을 계기로 한 정상회담을 포함하면 이번이 10번째 한ㆍ미 정상회담이다.
그런데 이번 회담 수행단에는 김정숙 여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 문 대통령의 워싱턴 한ㆍ미 회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김 여사는 해외 순방을 염두에 두고 지난 3월과 4월, 38일의 간격을 두고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접종까지 완료했다. 두 차례 접종 모두 문 대통령과 함께였다.
그런데도 김 여사가 제외된 이유가 뭘까.
문 대통령과 김 여사의 백신 접종은 6월 초 영국에서 개최되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서였다. 1ㆍ2차 접종의 간격 등을 고려해 3월에 1차 접종이 이뤄졌다.
그런데 한ㆍ미 양국은 지난달 16일 새벽 “5월말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공동발표했다. 영국 순방 전에 미국 일정이 추가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급하게 방미 수행단을 꾸려 추가로 백신을 접종시켰다. 철저한 방역조치를 요구한 미국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바람에 당초 4월로 추진되던 정상회담 일정은 1ㆍ2차 백신 접종과 그 사이 기간, 2차 접종 후 2주일이 경과돼야 한다는 조건까지 감안해 5월 21일로 확정됐다고 한다.
미국은 방미단의 규모도 제한했다. 청와대 참모진도 최소 인원으로 축소됐다.
이 과정에서 김 여사가 방미 수행단에서 제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김 여사가 순방에 빠진 이유는 미국이 요청한 방역조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도 김 여사의 방미단 제외 이유를 “코로나에 따른 불가피한 인원 축소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초의 ‘투잡’ 퍼스트레이디
하지만 방역이외의 이유도 거론된다. 아직까지 외빈 접견 일정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를 고려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질 바이든 여사는 미국 최초의 ‘투잡’ 퍼스트레이디다. 그는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NOVA)의 현직 영작문 교수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그는 “교직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때도 그는 교직을 유지했다. 채점해야 할 ‘시험지 뭉치’를 들고 전용기에 탔던 ‘투잡 세컨드레이디’였다.
정부의 고위 인사는 “바이든 여사가 투잡을 유지하면서 외빈 접견 등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과거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는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여사가 방미에 참여하더라도 바이든 여사와의 별도 일정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 여사의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첫 공식 외부 행사는 3월 4일 일선 학교에서 진행됐던 코로나 상황에서의 대면수업 현장이었다. 그는 당시에도 “나는 교사이고, 지금도 화상으로 가르치고 있다”며 “교사들은 학교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앞서 지난 4월 워싱턴을 방문했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도 배우자가 동반하지 않은 ‘나홀로 방미’ 일정을 소화했다.
김정숙 여사의 '감초'역할과 논란
김 여사는 상대적으로 무뚝뚝한 문 대통령과 달리 정상 외교의 ‘감초’라는 말을 들었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부부의 국빈방한 때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좋은 관계를 맺었고, 이듬해 문 대통령의 방미 때 두 사람은 백악관에서 별도의 ‘퍼스트레이디’ 단독 오찬을 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북한의 리설주 여사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7년 필리핀 동포간담회 때는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기도 했다. 이밖에 해외 순방 때마다 노인요양시설, 치매시설, 아동병원 등을 방문하며 문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반드시 긍정적 평가만 나왔던 건 아니다.
2019년 라오스 순방 때는 전용기에서 내려 문 대통령보다 앞서 걸으며 논란을 자초했다. 전용기 탑승 트랩에도 문 대통령에 앞서 올랐다. 당시 김 여사의 행동을 놓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18년 체코 프라하 비투스 성당을 관람했을 때는 김 여사가 문 대통령의 동선을 놓쳤다. 당시 김 여사는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라고 소리치며 이미 성당을 빠져나온 문 대통령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이 모습에 한국 의전팀과 상대국 의전팀 모두 깜짝 놀랐다.
같은해 김 여사가 ‘공군 2호기’를 타고 인도를 단독 방문한 것도 야당의 비판을 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