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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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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지난주 정치권 블랙코미디 중 흥행작은 단연 여권의 ‘공수처 유감’이다.

지난 10일 공수처(공직자범죄수사처)가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채 관련 의혹을 택하자 기관 탄생의 산파였던 여당에선 비난과 우려가 쏟아졌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이재명 경기지사) “국민 기대에 어긋난다”(이낙연 의원) “귀를 의심할만한 말”(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두둔과 응원은 오히려 “사생결단”(황교안 전 대표) 저지에 나섰던 제1야당에서 나왔다.

두 집단의 어색한 감정선 중 그나마 와닿는 하나를 고르라면 ‘우려’다. 문제는 뭐가 걱정이냐다. 여권의 불안은 공수처가 “칼날은 검사가 검사를 덮은 죄, 뭉개기 한 죄를 행해야 한다”(추 전 장관)는 기대를 저버린 데다 진보교육감이라는 진영의 상징을 침해할 거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노트북을 열며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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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도의 정착이라는 관점에서 정작 걱정스러운 건 1호 사건이 공수처가 ‘직권남용 수사처’로 전락하는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을 대리한 윤석열 사단의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를 계기로 직권남용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듯했지만 이 죄목이 수사기관엔 계륵이라는 역설도 동시에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말기(2016년) 4553건이던 관련 고소·고발은 적폐청산 붐을 타고 2019년 1만6768건으로 폭증했지만, 구성요건 입증이 어려워 고소·고발 대비 기소율은 2019년 0.13%에 그쳤다. 윤석열 사단이 수사·기소했던 사건에서도 무죄 판결이 속출했다. 2018년 조 교육감이 담당 결재라인을 건너뛰고 비서실장을 시켜 해직교사 5명을 특채했다는 단순한 얼개의 혐의도 유죄 판결로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누군가의 죽음을 부르는 악질적인 직권남용도 있지만 돈 문제가 아닌 탓에 표적 수사 논란이 자주 뒤따른다. 수사 범위 확장은 자칫 공무원 사회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부작용도 윤석열표 블랙리스트 수사로 확인됐다.

더 안타까운 건 ‘검사 잡는 공수처’라는 영화의 한 장면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직 빈자리가 넘치는 공수처의 조직도엔 범죄 첩보를 스스로 입수하는 기능이 없어 늘 고소·고발의 옥석을 가리거나 검·경의 사건을 넘겨받기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게다가 공수처 검사 자리는 수사 초보들로 채워지고 있다. ‘검사 뇌물수수’ 같은 고난도 수사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란 얘기다. 여권마저 기대를 버린 듯한 상황에서 공수처가 뿌리를 내려갈 수 있을까. 공수처는 긴 망설임 끝에 이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규원 검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