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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한국 골퍼들이 댈러스에 모인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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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는 벤 호건과 바이런 넬슨을 배출한 골프 도시다. 최경주 등 많은 한국 골퍼들이 거주하며 이경훈(사진)과 배상문, 강성훈이 바이런 넬슨에서 우승했다. [EPA=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는 벤 호건과 바이런 넬슨을 배출한 골프 도시다. 최경주 등 많은 한국 골퍼들이 거주하며 이경훈(사진)과 배상문, 강성훈이 바이런 넬슨에서 우승했다. [EPA=연합뉴스]

1912년은 미국 골프에서 의미 있는 해다. 전설적인 선수 세 명이 이 해에 태어났다. 벤 호건, 샘 스니드, 바이런 넬슨이다. 놀랍게도 호건과 넬슨은 어린 시절 같은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며 자랐다. 텍사스주 포트워스(댈러스와 붙어 있어 하나의 문화권이다)에 있는 글렌 가든 골프장이다.

PGA 바이런 넬슨 대회 열리는 곳 #이경훈·배상문·강성훈 첫승 성지 #최경주 등 한국선수들 다수 거주 #홈 같은 곳, 넬슨 기념비 어떨까

두 선수는 경쟁하며 자란 덕분에 더 크게 성장했다. 첫 캐디 골프 대회에서 넬슨은 아홉 홀 연장 끝에 호건을 꺾고 우승했다. 기선을 잡은 넬슨은 호건보다 일찍 프로골퍼로 성공했고 34세에 은퇴했다. 1945년 넬슨은 골프에서 가장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평가되는 11연속 우승 등 18승을 했다.

배상문과 강성훈, 이경훈은 모두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PGA 투어의 첫 승을 기록했다. 배상문은 투어 2년 차, 39개 대회 만에 첫 챔피언이 됐다. 강성훈은 159번째, 이경훈은 80번째 대회에서다. 바이런 넬슨은 한국 선수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대회다.

LPGA 투어에서도 박성현, 허미정, 신지은, 재일교포인 노무라 하루(한국명 문민경) 등이 댈러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다. 댈러스는 한국 선수들에게 새로운 약속의 땅이다. 한국 선수가 댈러스에서 많이 우승하는 게 우연만은 아니다. 댈러스는 한국 선수들에게 일종의 홈 타운이다. 실제로 많은 한국 선수가 댈러스에 산다.

댈러스는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다. 어느 방향으로든 이동, 그리고 시차 적응에 편하다. 한국을 오가는 항공기 직항편이 있다. 소득세가 없다. 그리고 규모가 꽤 큰 코리아타운이 있다.

최경주가 가장 먼저 정착한 뒤 댈러스를 한국 남자 선수들의 교두보로 만들었다. 양용은도 한때 이곳에 살았다. 배상문, 강성훈, 노승열, 김시우, 김민휘 등의 집이 댈러스에 있다. 요즘은 LPGA 투어 선수들도 텍사스주로 옮겨온다. 김세영, 전인지, 허미정, 이일희 등의 주소가 댈러스다.

한국 골퍼들은 댈러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할 경우 집에서 밥을 챙겨 먹는다. 일종의 홈 어드밴티지가 있는 게임과 비슷하다. 비단 살지 않아도 한국 선수들에게 댈러스는 익숙한 도시고 큰 부담이 없다.

다시 넬슨과 호건으로돌아가 보자. 넬슨은 골프 선수 중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쓴 골프 대회를 만들었다. 넬슨은 덕이 많은 골퍼였고, 후배들에게 많은 걸 베풀었다. 후배들을 위해 대회를 만들었는데, 한국 선수 세 명이 그 과실을 땄다.

호건의 대회로는 그가 유난히 좋은 성적을 낸 콜로니얼 인비테이셔널이 꼽힌다. 호건이 1등을 많이 해 ‘콜로니얼 2등 인비테이셔널’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호건은 ‘얼음 인간’으로 불린 차가운 사나이였다. 호건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는 역경 속에서 자랐고 교통사고를 이겨내는 등 수많은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바이런 넬슨이라는 대회 이름은 여전히 건재한데, 호건의 상징인 콜로니얼 대회는 찰스 슈웝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좀 아쉽다.

댈러스를 근거지로 둔 한국 골퍼들이 넬슨과 호건이 뛰어놀던 글렌가든 골프장에 기념비라도 세우면 어떨까. 위대한 골퍼를 배출한, 자부심 큰 도시 댈러스/포트워스도 한국 골퍼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거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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