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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손정민 사건..불신 음모 판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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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6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열린 '고 손정민 군을 위한 평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우산을 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열린 '고 손정민 군을 위한 평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우산을 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공원 의대생 손정민 익사 사건..극단으로 갈리는 여론 #익명 커뮤니티와 사이버레커의 무책임한 가짜정보 규제해야

1.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의대생 고 손정민 사건이 너무 뜨겁습니다. 기본적으론..청년을 추모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추모열기가 이례적으로 뜨겁습니다. 지난 16일엔 그를 추모하는 평화집회가 한강변에서 열렸습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400여명의 참석자들은 현장에서 같이 술을 마셨던 친구A의 실명을 밝히며 ‘구속하라’고 외쳤습니다. A씨를 살인범으로 확신했습니다. 관할 서초경찰서까지 행진했습니다. 전례 없던 현상입니다.

2.반작용도 생겼습니다. 17일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A씨의 변호인이 입장문을 내놓았습니다. A씨가 기억하는 상황을 정리해 내놓으면서‘수사결과 나올때까지 억측과 명예훼손 삼가해주길 부탁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같은 날 카카오톡에 ‘A씨 보호모임’이라는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졌습니다. A씨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카톡을 이용해 뜻을 모으자는 취지에서 단체대화방을 만든 겁니다.

3.사실확인조차 안된 사건을 두고 이렇게 여론이 극단적으로 갈려 들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디지털 세상의 병리현상입니다.
첫번째 책임을 물을 곳은..불신의 기폭장치가 된‘에브리타임(Every Time)’입니다. 대학생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입니다. 2010년 만들어졌기에, 그 이전 대학을 다닌 사람은 전혀 모르는 세상입니다. 강의평가 정보공유와 중고거래 등 대학생이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모여있는 사이버 공간인데..국내 모든 대학의 모든 학생이 이용합니다.

4.문제는 에브리타임이 익명 커뮤니티라는 점입니다. 대학재학만 인증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데다..익명이기 때문에 가짜정보와 파렴치한 글이 난무합니다. 작년엔 우울증을 호소하는 학생에게 ‘티내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는 댓글을 남긴 악플러를 유족이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익명의 글이 불을 질렀습니다.

5.시신이 발견된 직후인 5월 2일 손정민이 재학하던 대학 에브리타임에 가짜 글이 올라왔습니다.
‘현장에 같이 있었다. 실족사는 아닌 거 같다. 경찰 연락 0통이다. 왜 경찰이 모르는지 이해 안된다. 친구A도 알고 있다. (경찰에) 얘기안한 거 같다. 이유는 대충 알 거 같다..’

6.사건발생 직후부터 이어져온 유가족의 의혹제기 등으로 이미 A씨를 의심하던 사람들에겐 확신을 심어주는 글입니다.
물론 학생회는 다음날 ‘가짜 글’임을 공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글은 SNS는 물론 각대학 에브리타임 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국에 퍼졌습니다. 청와대에 ‘손정민 억울함 풀어주세요’란 국민청원이 시작된 것도 이날입니다.

7.두번째 책임을 물을 곳은 속칭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활약하는 레커(견인차)’란 뜻입니다. 먹거리가 될만한 사건이 생기면 재빨리 달려들어 온갖 가짜 정보를 만들어내는..무책임한 유투버와 블로거를 비꼬는 표현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흐릿한 반포한강공원 CCTV를 보여주면서 ‘손정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한강물에 던져지는듯한 모습’이라고 주장한 ‘물보라’영상입니다. 수백만명이 봤습니다.

8.가짜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신속하게 유포되는 세상이 현실화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누구나 선망하는 의대생이, 많은 젊은이들이 음주를 즐기는 한강공원에서, 의혹투성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관심이 폭발적이기에 가짜정보는 더 위협적입니다.
익명의 커뮤니티와 무책임한 사이버 레커의 폭주를 막기위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기구가 이미 있습니다. 사회적 변화에 걸맞는 적극적 역할에 나서야 합니다.
〈칼럼니스트〉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