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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갈수록 작아지는 아버지 어깨 떠올린 위스키 ‘몽키숄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0)

“어서오세요, 오늘도 혼자시군요.”

“새삼스럽게 ㅎㅎ. 제가 언제 누구랑 같이 온 적 있어요? 여긴 저만의 공간으로 삼고 싶어요. 아무도 소개 안해줄거예요~!”

“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손님이시군요. 친구도 좀 데려오고 해서 가게를 알려주시면.”

“헤헤, 그래도 제가 두 명 분 정도는 하지 않아요? 엄청 마시잖아요! 위스키는 천천히 마시니까 잘 취하지도 않아서 계속 마시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술기운이 올라오면 혼쭐 납니다. 늘 조심하셔야 되요. 뭐, 제가 늘 지켜보고 있으니 저희 가게에서 만취할 일은 없을 테지만요.”

사이좋은 아버지와 딸의 테이블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웃음이 가득하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엿듣게 된다. [사진 pixabay]

사이좋은 아버지와 딸의 테이블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웃음이 가득하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엿듣게 된다. [사진 pixabay]

반대편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성이 술을 주문해온다.

“마스터, 여기 맥캘란 18년 두 잔 줘요! 이 녀석이 위스키를 꽤 잘 마시네!”

그 손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다. 그 옆에는 앳된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스키를 한 모금씩 마시고 있다.

“아빠, 저는 역시 쉐리 위스키가 맘에 드는 것 같아요. 피트가 들어간 위스키는 좀 마시기 힘드네요. 이게 라가불린 16년이라고 하셨죠? 남은 건 아빠가 좀 마셔주세요. 저는 글렌드로낙 12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이거 한 번 마셔보거라. 맥캘란 18년이다. 맥캘란은 ‘싱글몰트계의 롤스로이스’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질 좋은 싱글몰트를 만드는 증류소란다. 특히 이 18년은 아주 옛날부터 사랑 받아온 위스키지. 네가 쉐리 위스키를 좋아한다면 분명히 이 위스키도 좋아할 거다.”

'싱글몰트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맥캘란. 쉐리 위스키를 좋아하면 이 위스키와도 잘 맞다. [사진 pixabay]

'싱글몰트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맥캘란. 쉐리 위스키를 좋아하면 이 위스키와도 잘 맞다. [사진 pixabay]

둘의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말없이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참…보기 좋네요.”

“그렇네요. 저희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인데, 딸이 이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다며 데려오셨어요. 딸이랑 술 한 잔 하는 날을 그토록 기다리셨거든요."

“아버지와 딸이 저렇게 친할 수도 있구나…”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으신가요?”

“아뇨.뭐 좋고 나쁘고 할 만한 게 없어요. 거의 대화가 없는 편이거든요. 아마 아저씨랑 저랑 지금까지 대화한 시간이 평생 아버지랑 대화한 시간보다 많을 걸요?”

“정말요? 너무 대화가 없으신데요.”

“뭐 딱히 대화거리가 없더라고요. 서로 바쁘기도 하고….”

몽키숄더 위스키. [사진 김대영]

몽키숄더 위스키. [사진 김대영]

백바에서 위스키를 한 병 꺼냈다. 원숭이 세 마리가 귀엽게 새겨진 위스키.

“오늘은 이 위스키를 한 번 드셔보시죠. 몽키숄더라는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입니다.”

“몽키숄더요? 원숭이 어깨? 이름이 재미있네요.”

“이 위스키는 세 증류소의 싱글몰트를 블렌딩해서 만듭니다. 글렌피딕, 발베니, 그리고 키닌비죠. 바닐라, 꿀 등의 단 맛이 지배적이지만 몰트 특유의 맛도 충분히 살아있고 피니시도 어느 정도 있는 편입니다. 밸런스가 참 좋죠.”

“그런데 왜 이름이 몽키 숄더예요?”

“요즘은 거의 기계로 맥아를 건조시키지만,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맥아 건조를 했습니다. ‘플로어몰팅’이라는 과정인데요, 지금도 발베니 등 몇몇 증류소에서는 이 작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많이 힘든 일이거든요. 삽으로 일일이 맥아를 뒤집어 줘야 해서요. 그래서 플로어몰팅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어깨가 굳고 아파지는 병을 얻었죠. 이런 병을 얻은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몽키숄더’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이 위스키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어느 날 아버지 어깨를 봤는데 너무 작아져 있는 거예요. 정말 넓게만 느껴졌던 어깨인데 말이죠. 그 날 이후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점점 작아지시는 것 같았어요. 저러다 언젠가 아버지가 점 하나로 소멸되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몽키숄더' 위스키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손님. 자신의 어깨에 관심없이 가족들을 짊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 pixabay]

'몽키숄더' 위스키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손님. 자신의 어깨에 관심없이 가족들을 짊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 pixabay]

“음. 저도 비슷한 걸 느껴본 것 같아요. 작년에 아버지가 좀 아파서 병원에 다니셨는데, 그 때 뭐랄까 아버지도 아플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신의 어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어깨 위에 실린 가족들을 위해서라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어깨는 ‘몽키숄더’가 아닐까요?”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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