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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실크가 건강식품으로…누에고치의 이상한 변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102)

지금은 유행이 지나갔지만 한땐 ‘실크아미노산’이 건강식품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유통은 된다. 가격도 만만찮다. 효능이 면역력증진, 당뇨, 고혈압, 뇌졸중, 피로회복, 숙취해소, 성장발육, 두뇌발달, 치매예방, 피부, 모발관리, 다이어트에 좋다면서다. 이 또한 여느 건식(健食)처럼 만병통치의 반열이다. 다단계까지 극성을 부렸다.

여기서 실크는 비단이 아니라 누에고치를 말한다. 비단 짜는 실을 가공해 사람에게 먹인다는 거다. 동물성 단백질이니 먹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냥 먹어서는 소화가 되지 않아 산으로 가수분해해 아미노산의 형태로 만들어서 먹였다. 이게 체내로 흡수되어 선약처럼 약효를 발휘한다는 것. 정말 믿어도 될까?

비단실은 누에 뱃속의 실주머니에서는 액체 형태였다가 입으로 토해내면 굳으면서 섬유로 변한다. 처음 토해낸 실과 마지막 나온 실이 고치가 완성될 때까지 끊어짐 없이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pixabay]

비단실은 누에 뱃속의 실주머니에서는 액체 형태였다가 입으로 토해내면 굳으면서 섬유로 변한다. 처음 토해낸 실과 마지막 나온 실이 고치가 완성될 때까지 끊어짐 없이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pixabay]

필수아미노산이 많아 좋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은 필수가 아닌 글리신, 알라닌, 세린이라는 단 3종류의 아미노산이 주체다. 왜 있지도 않은 필수아미노산을 들먹이는지 모르겠다. 필수 좋아하는 소비자를 속이기 위한 걸까? 한소리 들을까 봐 첨언한다. 물론 필수가 눈곱만큼, ‘있으나 마나 한 흔적 정도는 들어있다’로 해두자.

이도 역시 건강식품에 있어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에서 나왔다. 허접한 논문을 근거로 해서 말이다. 그냥 실험을 해보니 그렇더라는 것. 자기만의 의도성 결론을 도출해 질 낮은 학술지에 싣기만 해도 버젓이 대접받는 이 분야의 허점을 이용한 거다.

한때 그렇게 칭송받던 실크아미노산이 왜 지금은 시들해졌을까. 위에 열거한 질병이 없어진 것도 아닐 테고. 아니면 한탕 하고 먹튀하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여느 건강식품처럼 효능이 없다는 것이 탄로 나 잠깐 유행을 타고 사라진 걸까.

고치실은 100% 단백질이다. 주성분인 피브로인(fibroin)과 소량인 세리신(sericin)이라는 2종류의 단백질로 되어있다. 전자는 섬유가 되는 것이고 후자는 실 가닥을 고치의 형태로 유지하기 위한 ‘풀(glue)’ 역할이다. 이런 실같이 뻗어있는 종류를 섬유상 단백질이라 총칭한다.

여기서 신기한 것이 있다. 비단실은 누에 뱃속의 실주머니에서는 액체의 형태로 있다가 입으로 토해내면 순간적으로 굳어 섬유로 변한다는 것. 처음 토해낸 실과 마지막 나온 실이 고치가 완성될 때까지 끊어짐 없이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신기하다. 차곡차곡 쟁여 풀로 붙여 고치의 형태로 만들었다. 가운데가 잘록한 것은 누에가 실을 뽑을 때 위치를 180도 바꿔가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차곡차곡 쌓아놓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미난 것은 거미줄도 고치와 같은 섬유상 단백질(fibroin) 종류라는 것. 이도 액상인 섬유를 꽁무니로 분사하면서 순식간에 굳게 해 실로 만든 것이다. 명주와 매우 유사한 단백질로써 인장강도가 특단이 높아 섬유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와 같이 소화되지 않는 섬유상 단백질을 인간이 왜 먹을 생각을 했을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실크와 거미줄 같은 이런 유사단백질은 동물에 많다. 털, 뿔, 손발톱, 심줄(엘라스틴), 콜라겐, 머리카락 등이 다 그런 종류. 이 중 콜라겐과 심줄 빼고는 식품으로 먹질 않는다. 그러나 엘라스틴은 곧 허접한 건강식품으로 나올 채비를 갖췄다는 소문이다. 콜라겐은 지금도 열풍이다. 같은 논리를 댄다면 머리카락이나 동물 털도 건강식품으로 손색이 없지 않나 싶다. 산으로 가수분해해 대머리에 좋다면서 말이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뽑는 광경이 과거 잠사 농가에서는 흔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비단실을 뽑을 목적이 아니라 약으로 쓰기 위해 누에를 키우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뽑는 광경이 과거 잠사 농가에서는 흔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비단실을 뽑을 목적이 아니라 약으로 쓰기 위해 누에를 키우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내친김에 고치로부터 명주실을 어떻게 뽑는지 보자. 고치 하나의 실 길이는 1500~2000m쯤 되고, 직경은 10-13μm 정도다. 1μm(마이크로)는 1000분의 1mm이니 눈에 보일락 말락 한다. 이를 시작부터 끝까지 풀어내어 실타래에 감은 것이 명주실이다. 지금은 전부 공장에서 제사하지만 옛날에는 가정에서도 뽑았다.

실 뽑는 과정은 이렇다. 겉으로 온전한 고치만을 골라 뜨거운 물에 삶아준다. 그러면 접착단백질인 세리신이 녹아내리고 실이 풀린다. 여러 개의 고치로부터 몇 가닥을 동시에 감아올려 꼬아주면 굵은 실이 된다. 고치가 열탕에서 동글동글 돌면서 실이 풀려나온다. 이때 몇 가닥을 타래에 감느냐는 엿장수 마음. 고운 실, 굵은 실은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하다는 뜻. 너무 가닥 수가 적으면 끊어지기 쉬워 작업이 어렵다. 이때 고치에 상처 등으로 끊어진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오래 두면 나방이 알을 낳으려고 뚫고 나와 고치는 버리게 된다. 번데기를 죽이는 처리를 해 보존성을 높이기도 한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뽑는 광경을 일반에는 볼 수가 없게 됐다. 과거에는 잠사 농가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아직 누에를 키워 부업 하는 농민은 있다. 비단실을 뽑을 목적이 아니라 약으로 쓰기 위함이다. 누에가 고치를 치기 직전 5령이 되면 당뇨에 좋다며 약품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전량 수매가 이루어진다. 누에똥도 함께 쓰인다니 누에는 버릴 게 없나 보다.

최근에는 명주실을 수술용, 인공고막, 인공뼈 등으로 이용하고, 번데기는 그냥 먹거나 약초 만드는 재료로도 쓰인다. 동충하초는 살아있는 누에에 버섯곰팡이를 살포하고 번데기가 된 후 자실체가 나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번데기는 좋아하는 사람에겐 간식용이 되고, 고 영양식품으로도 된다. 요즘은 귀뚜라미, 굼벵이, 거저리(고소애) 등이 많이 양식되는 모양이다. 미래 인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곤충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 같다. 영양 측면에서는 육식 못지않다. 혐오스럽다는 인식을 뺀다면.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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