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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16명 해고하며 '웃음 이모티콘'…중계동 주민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서 경비원 부당해고를 규탄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문화제를 열었다. 독자제공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서 경비원 부당해고를 규탄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문화제를 열었다. 독자제공

“아파트 입주민으로서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 모인 20여명의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 나온 목소리다. 마이크를 든 한 입주민은 “누군가의 아버지인 경비원들이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해고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경비원 16명 문자해고’에 반대하는 입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입주민·경비원 한마당’ 자리였다.

경비원 16명 문자해고 논란 이어져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의 일부 경비원들은 문자를 통해 해고 통보를 받았다. 독자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의 일부 경비원들은 문자를 통해 해고 통보를 받았다. 독자제공

서울 노원구 중계그린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16명이 최근 집단 해고를 당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해당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44명 중 16명이 경비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됐다. 문자 한 통으로 해고 내용을 통보받았다. 새로 계약한 업체 측이 “더 이상 함께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 드린다”는 내용을 웃음 이모티콘과 함께 문자메시지로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이에 일부 아파트 입주민들이 지난 14일 경비원들의 해고를 반대하고 복직을 촉구하는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들은 ‘해고 경비 노동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집단해고 반대’ ‘고용승계 보장’ 등의 문구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아파트 중앙상가 앞에 모였다. 해고된 경비원들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 입주민들은 자유 발언대 시간을 통해 경비원 해고의 부당함을 규탄하기도 했다.

“주민들 모르게 경비원 일방 해고”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서 경비원 부당해고를 규탄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문화제를 열었다. 독자제공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서 경비원 부당해고를 규탄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문화제를 열었다. 독자제공

이날 자유발언대에 선 입주민 최모(56)씨는 “경비원분들이 집단해고된 것을 뒤늦게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며 “근무에 불성실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전혀 없음에도 오랜 기간 이웃 주민들과 함께했던 경비원들이 일방적으로 해고가 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집단해고 사실을 입주민들에게 처음 알리고 서명운동을 제안한 입주민 강여울(30)씨는 “그동안 경비원에게 갑질을 일삼는 아파트의 뉴스를 보면서 비판적이었는데, 우리 아파트에서도 나쁜 사례를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경비원 집단해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비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의 요구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체, “고용승계 의무사항 아냐, 문자논란 오해”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서 해고된 경비원이 발언하고 있다. 독자제공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중계그린아파트 인근 상가 앞에서 해고된 경비원이 발언하고 있다. 독자제공

중계그린아파트의 경비원 해고 사례처럼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경비원이나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이 단절되는 문제는 과거부터 반복돼왔다. 입장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고용 승계 여부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시각이 있는 한편, 의무 사항이 아닌 이상 업체 측의 ‘계약의 자유’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중계그린아파트에서 경비 용역 계약을 새로 맺은 업체 측은 중앙일보에 “해고가 아닌 재계약을 안 한 것이다”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문자를 보낸 당사자인 해당 용역업체 관계자는 “계약서에 고용승계가 명시되지도 않았고, 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서 이를 요구한 적도 없다”며 “그런데도 우리는 기존 경비원 인원 70% 이상과 재계약을 체결했고 나머지 인원도 면접을 거쳐 합리적인 이유로 재계약을 안 했음에도 ‘부당해고’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논란이 된 문자 통보와 웃음 이모티콘에 대해서도 “띄어쓰기를 하고자 꺾쇠(^)를 활용했을 뿐이다”며 “애초에 이모티콘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인데 논란이 커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노동자 생존권 주식처럼 거래되는 실정”

반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고용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현수 노무사는 “공공부문 노동자는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에 의해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민간부문 노동자는 보호 장치가 전무해 용역업체 등 기업이 바뀔 때마다 생존권이 주식회사의 주식처럼 거래된다”며 “하루빨리 관련 법령이 신설돼 민간부문 노동자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내몰리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입주자 강씨는 “경비원의 교체 문제는 용역업체와 아파트 입주민들과의 합의가 필요한 사항임에도 이러한 절차가 무시됐다”며 “부당해고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고발 조치하는 등 주민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입주민들은 해고 경비원들의 고용 승계가 될 때까지 경비원들과 함께 ‘한마당’ 자리를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각 세대 베란다에 경비원 집단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게시할 예정이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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