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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여사 언급하면 싸움난다…여야, 文가족에 민감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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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4일 청와대 본관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어린이들과 영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4일 청와대 본관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어린이들과 영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임혜숙 장관 임명 강행 뒤에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4일 배포한 아홉 문장의 보도자료에 포함된 한 문장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황보 의원이 애초 보도자료를 낸 이유는 문 대통령이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걸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영부인 배후설’이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회의 중에 나온 발언이 아니란 점이다. 정제된 형식의 ‘보도자료’에 이 문장이 포함됐다. 문장의 형식도 “얘기도 나온다”는 식의 설(說)을 전하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즉각 나서 “황보 의원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최소한의 품격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도 자신의 블로그에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며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근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적었다. 그러면서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는 “영부인이 사사롭게 개입할 여지가 1%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철희, “굉장히 악의적…아주 구태정치”

여진은 17일에도 이어졌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굉장히 악의적 의혹”이라며 “아주 구태정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황보 의원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김정숙 여사 배후설’까지 제기하며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를 제조하고 나섰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허위사실유포”라며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징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보 의원이 속한 국민의힘의 입장은 어떨까.

일단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 문제에 관해 별다른 언급을 안 하고 있다. “지도부가 나설 일이 아니고 의원 개인이 풀 문제”라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한다. 김현아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황보 의원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세상의 민심을 대통령과 정치권에 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걸 (황보 의원이) 전했다고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소문만으로 보도자료 쓰냐” 비판

실무진에선 비판적 의견이 나온다. 임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각종 자료를 검토했던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김정숙 여사와 임 장관과 관련한 이런저런 소문을 듣기는 했다”면서도 “단순히 소문만으로 보도자료를 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여권뿐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황보 의원의 배후설 제기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곽상도(왼쪽) 의원과 황보승희 의원.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곽상도(왼쪽) 의원과 황보승희 의원. 오종택 기자

당사자인 황보 의원은 이 문제에 관해 사흘째 공개 발언을 삼가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 “(김정숙 여사가 개입한) 물증이 있지는 않다”며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는 입장만 밝혔다. 일종의 ‘합리적 의심’이란 주장이다. 황보 의원은 1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는 “추가 대응을 할지를 놓고 검토 중에 있다”고만 했다.

정작 야권에서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 건 청와대와 민주당의 반응이다. 김현아 비대위원은 “의아한 것은 여당 국회의원들의 반응”이라며 “김정숙 여사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굉장히 발끈하고 있다”고 말했다.

野, “與, 김정숙 여사 언급만으로 발끈한다” 

그동안 문 대통령의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여권과 국민의힘은 충돌해 왔다.

지난 3월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문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경남 양산의 새 사저와 관련해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배포했을 때도 김정숙 여사가 실제 농사를 지었느냐가 쟁점이 됐다. 같은 당 곽상도 의원은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와 딸 다혜씨 관련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논란이 될 때면 윤건영 의원 등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이 나서 엄호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가족이 야권의 공격 대상이 되는 건 과거 대통령의 가족과 달리 활발한 공개 활동을 하기 때문이란 시각이 야권엔 있다. 미디어 아트 작가인 준용씨의 경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힐 뿐 아니라 야당 의원과도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 인사말을 한 후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 인사말을 한 후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정치권에선 야권의 문 대통령 가족 비판에 대해 여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과거 경험에서 찾기도 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수사에서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 가족은 수사의 타깃이 됐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노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했던 여권 입장에선 야권이 문 대통령의 가족을 겨냥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 그룹인 ‘문파’의 경우 스스로 적극적인 활동을 펴는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지지자들이 지켰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하곤 한다.

文,『운명』에서 “노 대통령 죽음은 정치적 타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 대통령 가족 문제에 여권이 강력히 대응하는 건 정권 말기에 권력 누수를 막으려는 의도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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