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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진보의 소주성 비판 일리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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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저는 그것이 코로나를 이겨내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시장개입 자제하고 중산층 중시를” #눈길 끄는 진보학계의 소주성 비판 #미래세대 정책, 보수·진보 따로없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연설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그것’은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을 가리킨다. 문 대통령은 “시장의 충격을 염려하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적어도 고용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이 강화되고 분배지표가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저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일련의 포용정책이 코로나 충격을 줄이는 안전벨트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다면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을 텐데 굳이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대못을 박았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 논란이 됐던 소주성의 대표 정책을 굳이 하나씩 언급하면서 말이다. 소주성에 대한 대통령의 애착과 집념이 넘쳐났다.

학계에서 소주성은 이미 실패로 결론이 났다. 더 이상 지지자를 찾기 힘들 정도다. 경제학자 윤소영은 정권 초기인 2017년 『위기와 비판』에서 소주성을 ‘경제학적 문맹 내지 사기’라고 비판했다. 주류 경제학계의 비판은 소주성이 성장 담론이 될 수 없으며, 정책 의도와는 달리 우리 사회의 최약자를 더 힘들게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기존 일자리만 보호할 뿐, 새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이 핵심이었다.

진보학계 평가도 인색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2018년 “일자리라는 마차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끄는 결과이기 때문에 마차를 말 앞에 둘 수 없다”고 했다. 마차를 말 앞에 뒀으니 말이든, 마차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소주성의 현실 적합성을 문제 삼은 가장 뼈아픈 비유였다.

서소문 포럼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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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경제학자들이 많이 참여한 지난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토론회에서도 따끔한 비판이 나왔다. 진보·개혁성향의 연구소를 이끌던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아호를 따 ‘학현(學峴)학파’로 불리는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단순한 소주성 비판을 넘어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 많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와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부분에서 뽑았다.

첫째, 시장의 작동원리를 무시하지 말고, 가격변수에 대한 개입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정부 역할을 줄이자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우석진 교수는 “부동산 시장에서 핀셋규제가 가능하다고 정부가 오판하는 바람에 정책은 실패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상실했다”며 “부동산 시장은 다면적이어서 시장참여자가 임차인이면서 임대인인 경우도 많고 실수요자이면서 투자자 혹은 투기자이기도 한데 정부가 너무 단면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둘째, 정책의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게 목표이지, 단기적인 경제성장 자체가 목표가 될 순 없다. 5년 단임 정부가 성장 담론에 너무 얽매이니, 대규모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같은 토건 경제사업에 뛰어드는 거다. 소주성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정책 목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수단이어선 안 된다. 경제정책을 잘 펴서 임금이 오르고(올리는 게 아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이 사라지며, 노동시간이 절로 줄어들면 얼마나 좋은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우격다짐으로 몸을 침대에 맞출 일은 아니었다.

셋째, 중산층 회복과 미래세대를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류덕현 교수는 빈곤층(저소득층) 위주의 복지 정책을 재설계해서 중산층을 위한 육아·보육, 주거복지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발전의 중심인 중산층의 잠재능력과 유인을 키우기 위해서다.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개편, 공정한 경제 시스템, 계층 이동성의 확대, 지대(rent) 추구 행위 차단 등은 보수의 주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가 노조의 지대 추구 행위를 애써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밖에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도록 ‘최저한세’를 도입하고 기본소득보단 기존 복지의 확대가 적절하다는 지적은 보수 쪽에서도 공감대가 많을 것 같다.

두 학자의 발표를 듣고 어느 토론자가 “신자유주의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무슨 무슨 ‘주의’ 딱지를 붙이는 데 헛심 빼지 말자. 설령 신자유주의면 어떻고 신사회주의면 또 어떤가. 나라가 편안하고 경제 잘 돌아가고 국민 삶의 질이 좋아지며 불평등·불공정이 줄어든다면 그걸로 족하다.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