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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영화 무료출연한 안성기 “반전·비밀 지닌 캐릭터에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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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주연작 ‘아들의 이름으로’로 오랜만에 언론과 만난 배우 안성기는 “무엇보다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주연작 ‘아들의 이름으로’로 오랜만에 언론과 만난 배우 안성기는 “무엇보다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편히 잘 살 수 있었는지….”

‘아들의 이름으로’ 주인공 맡아 #죄책감 없는 가해자에게 복수 #“공감 이끌어내기 위해 감정 절제”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12일 개봉)에서 주인공 오채근이 1980년 5월 광주 유혈진압 책임자들을 질책하는 대사다. 지난해 5·18 40주년에 맞춰 광주광역시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제작된 영화다. 배우 안성기(69)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서울에서 대리운전하며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오채근이 5·18의 아픔에 공분하며 반성 없는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당시 계엄군 중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들의 입장까지 두루 녹여내 기존 5·18 영화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12일 개봉해 관객 수 3200여 명에 그쳤지만, 영화를 본 이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메가박스 관람평 게시판엔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아픔” “연기가 좋았다” 등 호평이 많았다.

안성기에겐 두 번째 5·18 영화다. 2007년 685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광주 시민군에 합류하는 퇴역 장교 박흥수 역을 연기한 지 14년 만이다. 출연료를 받지 않고 제작비 투자에 이름을 올렸다. e메일 인터뷰로 만난 그는 “영화를 선택할 때 개런티는 중요하지 않다. 투자라기보다 함께 힘을 모아 영화를 완성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로는 “영화적인 재미가 있는 시나리오”를 들었다. “여러 인물의 심리가 생생하게 표현돼 있었고 특히 반전과 비밀을 간직한 인물 ‘오채근’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오채근(왼쪽)은 5.18 피해자와 가해 책임자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오채근(왼쪽)은 5.18 피해자와 가해 책임자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오채근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 광주 시민들에 대한 죄책감, 반성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분노 등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라 관객들이 그의 선택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며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나가는 느낌으로 연기했습니다.”

“이 새끼들 맨날 맞아주고 다니니까 만만하게 보는 거야” “여태 반성하지 않은 인간들, 살 가치가 없는 거 아니에요?”…. 영화엔 메시지를 직접 드러낸 대사가 많다. 안성기를 비롯해 윤유선·정보석 등 중견 배우들이 현실에 발붙인 대화로 소화해냈다. 특히 “누가 봐도 우린 애국자지, 살인마 아니야” “정 힘들면 우리 교회로 와.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신다” 등 5·18 가해자의 죄책감 없는 모습을 그린 박장군 역 배우 박근형과 안성기가 나누는 짧지만 노련한 호흡이 영화의 다소 극단적인 결말을 받쳐준다.

안성기는 1980년 5월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촬영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1980년은 배우로서 새롭게 도약하는 시기라 주로 현장에서 바쁘게 보낸 기억이 난다. 그래서 광주는 뉴스 보도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진상을 알게 된 건 훨씬 시간이 지난 후였다”고 했다.

올해로 연기 64년째, 지난해 10월 주연작 ‘종이꽃’ 개봉 시기 갑자기 입원한 바 있다. 그는 “지금은 건강하고 컨디션도 좋다. 배우로서 늘 준비된 모습을 갖추려 데뷔 후부터 꾸준히 운동해왔다”며 “매년 한 편 이상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차기작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 장군 휘하 노익장 ‘어영담’이 돼 바다를 호령할 예정이다.

“매 작품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새롭게 매력을 느끼는 ‘영화’라는 장르를 사랑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기에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준비하며 주어진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은 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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