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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취소 100%에 알바로 1년반…흩어졌던 합창단 다시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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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모테트 합창단이 1년 6개월 만의 정기 연주회를 위해 13일 모였다. 단원 절반이 띄어 앉아 마스크, 페이스실드를 썼다. 공연은 다음 달 4일 열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모테트 합창단이 1년 6개월 만의 정기 연주회를 위해 13일 모였다. 단원 절반이 띄어 앉아 마스크, 페이스실드를 썼다. 공연은 다음 달 4일 열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1일 서울 서초동 한 건물 지하의 서울 모테트 합창단 연습실. 합창 단원 18명이 드문드문 앉고 그 앞에 지휘자 박치용(58)씨가 섰다. 부르는 노래는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레퀴엠(진혼곡). “소리가 작아질 때는 좀 더 정교해야 합니다. 다시 해보죠.” 마스크에 페이스 실드까지 쓴 성악가들의 소리가 섬세하게 뻗어 나왔다.

창단 32년 서울 모테트 합창단 #코로나 딛고 내달 4일 연주회 #“우리에게 무대는 밥 같은 존재 #그걸 못하니 생계·자존심 무너져”

서울 모테트 합창단은 박치용씨가 1989년 창단했다. 취미로 모였거나, 공연이 있을 때만 연습하는 곳이 아니다. 박씨는 “창단 이듬해부터 ‘매일 출근하고 월급 받는 합창단’으로 체질을 바꿨고, 2000년 초반부터 4대 보험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단원 40여 명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 25년이 넘는 단원도 7~8명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연간 예산을 지원하는 곳도 아니다. 공연의 티켓 수익금, 민간 후원금, 공연 출연금, 또는 프로젝트별 국가 지원금으로 재정을 마련하는 순수 민간단체다. 현재 한국에는 국립을 비롯해 각 지자체 합창단이 50여곳이지만 이렇게 운영되는 민간 합창단은 서울 모테트 합창단이 유일하다. 30년 1800여 회 공연 경력이 저력을 증명한다.

2019년은 서울 모테트 합창단 역사의 하이라이트였다. 30주년을 맞아 한 해 전부터 대규모 합창곡을 연주했다. 멘델스존 ‘엘리야’, 헨델 ‘메시아’를 거쳐 바흐의 모테트 전곡, 세속 칸타타, b단조 미사, 그리고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까지 무대에 올렸다.

거기가 마지막이었다. 박씨는 “지난해 계획한 연주가 100% 취소됐다. 1년 6개월 동안 다시 공연해보려 두 번 모였다가 코로나19가 확산세로 돌아서면서 무대에 서지 못했다”고 했다.

매년 4회 정기연주회, 또 합창이 포함된 다양한 무대에 출연했다. [사진 서울모테트합창단]

매년 4회 정기연주회, 또 합창이 포함된 다양한 무대에 출연했다. [사진 서울모테트합창단]

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예술가들의 코로나 피해는 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이달 10일 발표한 ‘예술동향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까지 공연예술분야의 누적 매출액 피해는 3954억원이었다. 시각예술분야 1210억원의 세 배 수준이다. 취소된 공연은 지난해에 1만6000건, 올해 넉 달 3400건 등 2만 건에 이른다. 이 통계는 문화예술분야에서 승인된 신용카드 내역을 바탕으로 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장·극장에서 사용된 금액은 2019년에 비해 46% 줄었다. 연구원이 ‘핵심문화예술’로 꼽은 10개 항목 중 ‘관광, 민속예술, 선물용품’(-54.6%) 다음으로 타격이 컸다.

합창단엔 직격탄이었다. 코로나19에도 오케스트라는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합창단은 불가능했다. 단원들은 성악 레슨, 공연 출연 등 외부 활동까지 막혔다. 재정 독립한 민간 합창단은 역설적으로 더 고통스러웠다. 서울 모테트 합창단 입단 20년째인 40대 단원 A씨(테너)는 “근본적으로 합창을 못하는 세상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박치용씨는 “단원들이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A씨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빵집에서 빵도 구웠다. 다른 단원 몇몇은 배달로 돈을 벌며 합창단이 다시 모이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들이 다시 모여 노래한다. 다음 달 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117회 정기연주회 ‘위로의 노래’다. 2019년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받은 지원금으로 공연 제작비의 약 60%를 충당했다. 본래는 지난해 3월 바흐 ‘마태 수난곡’으로 30주년 사이클을 완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곡을 바꿔 포레의 파반느(느린 춤곡), 레퀴엠(진혼곡), 엘레지(슬픈 노래)를 부른다.

지난 11일 연습에는 그렇게 오랜만에 단원 절반만 모였다. 코로나19의 방역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사이에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고려해 연습 시간을 오전, 저녁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낮에 일하는 단원들은 같은 날 저녁 연습에 참여한다. A씨는 “거의 모든 단원이 기적적으로 복귀했다”며 “첫 음을 내는 순간 ‘아, 이것 때문에 음악 했었지’라고 느꼈다”고 했다.

99년 입단한 소프라노 단원 B씨는 “주저앉아 있었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무대는 밥 같은 존재였다. 그걸 못하면서 생계와 자존심이 동시에 무너졌다.” 그는 “조금 연습하다 결국 공연을 못 했던 기억이 두 번 있어 이번 연습도 조심스럽게 시작했다”고 전했다.

박치용씨는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26세에 합창단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독주자처럼 제대로 된 합주 단체도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쉬운 노래, 인기 많은 크로스오버로 가지 않고 합창 음악의 정수만 파고들었다. 다른 합창단들의 지휘자가 몇 년 주기로 바뀔 때 한 명이 이끌어온 서울 모테트 합창단은 같은 색채로 깊이를 추구했다. 2014년 청소년을 위한 합창단을 따로 만들어 교육으로 영역을 넓혔고, 2019년엔 바흐 음악의 정통을 이어온 독일 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그는 “30년 동안 어렵지 않은 때는 없었지만 코로나의 충격은 컸다”며 “다음 달 연주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발견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객석 띄어 앉기 등 방역 수단을 고심하고 있는 서울 모테트 합창단은 9월과 12월에도 정기 연주회를 계획 중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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