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사 대상이 아닌데?" 이 결론까지 3개월 걸린 공수처

중앙일보

입력 2021.05.17 18:13

업데이트 2021.05.17 18:48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은 지난달 23일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를 방문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검사 13명 중 기록 검토는 2명,
'1호 수사' 조희연에 5명 투입

▶조 의원=“수사는 공정하고도 신속해야 한다. 곽상도 의원도 그걸 강조하러 온 거다.”
▶김 처장=“서울중앙지검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것으로 안다. 공수처는 명예훼손 사건은 하지 않는다.”

김 처장이 말한 ‘명예훼손 사건’이란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2019년 6월 이규원 검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걸 말한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19년 3월 곽 의원의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性) 접대 사건 관련 경찰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을 제기했고, 곽 의원은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곽 의원은 이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사건’을 담당한 이 검사를 거꾸로 고소했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항의 방문하기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항의 방문하기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명예훼손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등)를 새롭게 인지, 지난 3월 17일 이 부분만 공수처에 이첩했다. 곽 의원과 조 의원이 이 사건에 대한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를 주문하며 항의 방문하자, 김 처장이 공수처에 넘어온 건 별개의 사건이란 점을 강조하며 공수처법이 규정한 고위공직자범죄에는 명예훼손이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공수처는 최근까지 명예훼손 사건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지난 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곽 의원을 공수처에 고발한 사건을 지난 10일에서야 대검찰청에 이첩했다.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기까지 걸린 시일은 83일. 김 처장이 “명예훼손 사건은 안 한다”고 공언한 이후에도 18일을 더 검토한 셈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면 접수하지 않거나 신속히 이첩했어야 했다”며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을 3개월이나 들고 있다가 이첩하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접수한 사건은 이미 1000건을 훌쩍 넘겼지만, 수사 개시나 타 수사기관 이첩 등을 판단하기 위한 기초조사 담당 사건분석조사검사는 2명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 등도 접수한 지 60일이 넘도록 여전히 검토 중이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1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며 관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1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며 관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뉴스1

공수처 검사의 정원은 처장·차장을 제외하면 23명인데, 현원은 13명이다. 이 중 수사2부(5명)는 공수처가 지난 7일 ‘1호 사건’으로 정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해직교사 특혜채용 혐의(직권남용)를 수사하고 있고, 나머지 인원 중 6명은 오는 31일부터 내달 25일까지 법무연수원에서 특별수사와 관련한 위탁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그만큼 수사 인력에 공백이 생긴단 얘기다.

그러나 부족한 인력 탓만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일례로 정원이 23명(현원 22명)인 춘천지검은 지난해 1만4400여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검사장·차장검사·인권감독관·공판검사와 파견·휴직자를 제외하면 13명가량의 검사가 한 달 평균 약 1100건의 사건을 처리한 것이다. 한 현직 검사는 “막 전입해 온 초임검사도 한 달에 100건씩 사건을 처리한다”며 “사건 처리를 미루다 나중에서야 다른 수사기관에 떠넘길 거면 비싼 세금 들여 공수처를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검찰의 시각으로만 공수처를 바라봐선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검찰 수사 관행이 잘못됐다는 인식 때문에 출범한 게 공수처”라며 “전방위 압수수색으로 속전속결하면 쉽다는 걸 공수처가 모르겠나. 그런 수사 관행을 조금은 바꾸겠다는 관점으로 공수처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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