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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도 내 친구 되어줘” 극단적 선택 여중생 추모한 친구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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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포도 맛 사탕 놓고 가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최종권 기자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최종권 기자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1층 화단에 닷새 전 이 아파트 고층에서 뛰어내려 숨진 A양과 B양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친구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모지도 보였다. “너무 보고 싶다 △△야. 다음 생에도 내 친구가 되어줘”,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 행복하게 지내”, “더 막아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추모 글이 담겼다.

투신 아파트 화단에 꽃다발·추모 메시지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누군가 놓은 우산 밑에는 숨진 여학생이 좋아했다는 포도 맛 사탕과 초콜릿 과자도 있었다. 한 주민은 “너무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어 안타깝다. 명복을 빈다”며 여학생을 추모했다. B양이 다니던 중학교 관계자는 “B양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교직원이 큰 충격에 빠졌다”며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성범죄 피해로 조사를 받던 여중생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가해자로 지목된 계부 C씨를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에 이어 이날 충북지역 시민단체가 C씨의 구속을 촉구했다.

“계부 엄벌하라” 국민청원에 진상규명 촉구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편지글이 쓰여 있다. 최종권 기자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편지글이 쓰여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교육연대,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등 3개 단체는 이날 청주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3차례 구속영장 신청은 범죄의 혐의가 충분하다는 의미”라며 “검찰은 가해자를 구속하고 범죄행위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교육기관도 잘못이 있다”며 “경찰·교육청·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공조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등 아동학대와 성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2학년인 A양과 B양은 지난 12일 오후 5시11분쯤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도중 숨졌다. 현장에서는 이들이 남긴 유서가 발견됐으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A양과 B양은 학교는 다르지만, 친구 사이였다. 이들은 A양의 부모가 지난 2월 성범죄 피해를 인지하고 경찰에 고소장을 내면서 성범죄 피해자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의붓딸 “분리조처 안 하겠다” 피해 진술 거부  

충북교육연대 등 시민단체가 17일 청주지검 앞에서 청주 여중생 투신 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충북교육연대]

충북교육연대 등 시민단체가 17일 청주지검 앞에서 청주 여중생 투신 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충북교육연대]

경찰은 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B양의 의붓아버지 C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C씨는 몇 개월 전 자신의 집에 놀러 온 A양을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자신의 딸 B양을 학대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C씨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3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증거보완이 필요하다며 반려했다.

청주시 등에 따르면 숨진 B양은 의붓아버지 C씨와 분리 조처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지난 2월 10일 청주시 아동보육팀 관계자,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와 함께 B양을 면담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면담 과정에서 B양 ‘학대 피해를 본 사실이 없다. 분리 조처 역시 거부하겠다’고 말했다”며 “쉼터나 B양의 친척에게 보내는 분리 조처를 하려 했으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피해 아동의 의사에 반하는 처분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계부 당장 구속하고 조사해야” 촉구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중생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의붓아버지를 엄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중생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의붓아버지를 엄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경찰 관계자는 “A양 역시 신변 보호 요청이나 피해 관련 상담을 원치 않았다”며 “관계기관에서 A양과 B양을 보호하려고 노력했으나, 아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범죄나 가정 학대 피해 학생을 돕는 학교 위(Wee)클래스, 교육지원청 위(Wee)센터에 A양과 B양의 피해 사실은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 3월 경찰은 B양이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 이 학교 상담 선생님이 배석한 가운데 피해 사실을 들었다. 학교 측은 “경찰이 2차 피해를 우려해 조사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며 “B양이 성범죄 피해로 조사를 받았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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