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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거 같아요" 술주정 남편, 벽돌 내리친 아내의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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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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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남편을 죽인 거 같아요."  

지난 15일 오후 1시 10분쯤 112신고센터로 한 여성이 흐느끼며 전화를 했다. 즉시 출동한 경찰은 경기도 평택시의 한 주택에서 심하게 머리를 다친 60대를 발견했다. 그는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에 숨졌다. 범인은 신고 전화를 한 부인 A씨(60대)였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그는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사건추적]

체포된 60대 아내 "남편이 술주정해 범행" 

평택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7일 밝혔다. 그는 지난 15일 오후 1시쯤 남편 과 식사를 하고 귀가한 뒤 남편이 욕설과 술주정을 하자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사흘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A씨는 남편의 머리를 때려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된 전력이 있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맞은 뒤 지인의 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A씨는 "내가 남편을 때렸는데 남편이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3일 전엔 절구, 사고 당일엔 벽돌 들어

당시 경찰은 두 사람을 분리하는 것 외에 다른 조치는 하지 않았다. 부인이 직접 "남편을 때렸다"며 신고하고 범행도구를 수거한 점 등을 이유로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편도 "사건 처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를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한 경찰은 17일 이들 부부는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남편 폭행으로 경찰이 출동한 지 3일 만에 A씨는 살인죄로 조사를 받는 상황에 처했다. A씨는 "남편에게 지난 12일 폭행을 사과하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점심을 먹고 귀가를 했다. 그런데 남편이 또 주정해 순간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A씨는 3일 전의 폭행 때는 마늘 찟는 절구를, 사망 당시에는 벽돌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30년 산 부부, 평소 남편 술 문제로 갈등    

부부는 30년을 함께 살았다. 여느 부부처럼 자식을 낳고 알콩달콩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술에 빠지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이 치료를 위해 10년 전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을 나온 뒤에도 알코올 중독은 치유되지 않았다.

평택경찰서 .연합뉴스

평택경찰서 .연합뉴스

술에 취하면 "가족들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원망하며 가족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남편의 행패로 2017년 5~6월쯤 경찰에 3차례 신고가 접수된 기록이 있다. 그해 5월 A씨는 "남편이 행패를 부려 때렸다"고 처음 신고했다. 이후에도 "남편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며 두 차례 더 신고했다. 남편은 경찰에 입건(가정보호사건)됐다.

경찰은 같은 해 이들 부부를 가정폭력 재범 우려 가정으로 분류했다. 3개월가량 모니터링하는 등 경찰의 관리 아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추가 신고가 접수되지 않고 부부도 더는 문제가 없다고 밝혀 그해 9월 재범 우려 가정에서 해제됐다. 가정폭력 재범 우려가정 등급 해제는 3개월간 신고 이력이 없으면 심사를 통해 해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편의 알코올 중독은 나아지지 않았다. A씨는 "지난 12일에도 맞아서 피를 흘린 남편이 치료받은 뒤에 또 술을 마시러 갔다"고 경찰에 하소연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 문제로 정신 병원에 다녀온 이후 가족을 원망하며 행패를 부려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며 "가정폭력보다는 음주로 인한 갈등이 쌓이고 쌓이면서 A씨가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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