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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메뚜기떼, 아프리카 습격" 9주전 흙은 알고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0년 3월 케냐에 메뚜기떼가 대규모로 발생한 모습. AP=연합뉴스

2020년 3월 케냐에 메뚜기떼가 대규모로 발생한 모습. AP=연합뉴스

아프리카 지역의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메뚜기떼 발생을 미리 예측할 수 있을까?

앞으로 위성자료를 활용하면 토양 관측으로 9주 후 메뚜기 떼의 창궐을 예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국제개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NASA SERVIR 프로그램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위성 관측을 활용하면 사막메뚜기떼가 발생할 조건을 한층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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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메뚜기(Schistocerca gregaria)는 연 강수량 200㎜ 미만인 아프리카, 서아시아 일대 사막에 서식하는 대형 메뚜기다. 1㎢당 8000만마리가 넘도록 빽빽하게 무리를 지어 하루 최대 150㎞의 긴 거리를 날아다니며, 지나가는 자리의 모든 작물과 식물을 먹어치운다. 한 무리가 먹어치우는 작물이 사람 3만 5000명분의 식량에 달하는 양이다.

논문에 따르면 NASA 연구팀은 인공위성을 통해 에리드리아, 지부티,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를 포함하는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에서 3㎞ 단위의 초목 정보를 수집하고, 고해상도 토양 데이터를 합쳐서 메뚜기 발생에 필요한 조건을 설정했다. 이 지역에서 메뚜기 발생이 시작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6월까지의 FAO 메뚜기 관측데이터를 활용해 번식기간을 추정하고, 당시 토양 상태를 추산했다.

모래~진흙, 토양수분 따져보니… 메뚜기떼 최대 87% 예측 가능

위 지도는 위성 관측을 기반으로 추산한 2020년 4월 16~18일 의 토양 상태를 보여준다. 색이 진할수록 토양의 질감, 수분 등 사막메뚜기 번식 조건을 많이 갖춘 토양 상태를 나타낸다. 실제로 사막메뚜기가 관찰된 지점은 흰 점으로 표시했다. 이 지도에서 진한 갈색으로 사막메뚜기 번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던 케냐에서는 실제로 두 달 뒤인 6월 18일 사막메뚜기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사진 NASA

위 지도는 위성 관측을 기반으로 추산한 2020년 4월 16~18일 의 토양 상태를 보여준다. 색이 진할수록 토양의 질감, 수분 등 사막메뚜기 번식 조건을 많이 갖춘 토양 상태를 나타낸다. 실제로 사막메뚜기가 관찰된 지점은 흰 점으로 표시했다. 이 지도에서 진한 갈색으로 사막메뚜기 번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던 케냐에서는 실제로 두 달 뒤인 6월 18일 사막메뚜기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사진 NASA

연구팀은 사막메뚜기가 알을 낳으려면 모래흙이 필요하며, 최적의 토양온도는 27~32도로 파악했다. 알의 부화기는 14~22일,미성숙한 메뚜기는 35~45일간 한 지역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모래흙 비율 기준으로 따져본 메뚜기 떼 발생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전체 관측 지역의 44%에 해당했고, 실제 메뚜기 떼 관측과는 80% 일치했다. 진흙 비율로 따졌을 때 메뚜기떼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관측 지역의 36%뿐이었다. 연구팀은 “메뚜기가 알을 낳기 좋은 최적의 모래-진흙 비율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모래와 진흙을 복합적으로 따져봤을때 ‘최적의 토양’은 전체 관측 지역의 30%였고, 이 지역에서 실제 관측된 메뚜기 떼의 74%가 발생했다.

토양 수분기준으로는 전체 지역의 50.1%가 메뚜기떼 발생에 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발생 직전 9주간 평균 토양수분이 메뚜기떼 발생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지도는 2020년 동아프리카에 대규모 메뚜기떼 창궐이 발생하기 직전,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의 토양 상태를 보여준다. 2019년 11월 14일 진한 갈색으로 메뚜기가 번식하기 좋은 상태를 보였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관측되던 메뚜기떼가, 9주 후 에티오피아에 나타난 뒤 케냐에서도 발견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자료 NASA

이 지도는 2020년 동아프리카에 대규모 메뚜기떼 창궐이 발생하기 직전,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의 토양 상태를 보여준다. 2019년 11월 14일 진한 갈색으로 메뚜기가 번식하기 좋은 상태를 보였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관측되던 메뚜기떼가, 9주 후 에티오피아에 나타난 뒤 케냐에서도 발견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자료 NASA

모든 조건을 합쳐보면, 대규모 메뚜기 떼가 발생한 곳은 62.5%가 9주 전 토양 상태가 발생에 '최적' 조건을 보였다. 흙의 종류, 혹은 흙의 수분도 중 한 가지만 갖춘 토양만 따져보면 9주 후 대규모 메뚜기떼 발생을 87.1% 예측할 수 있었다. 토양 질감만 따져보면 30%, 수분으로는 51%가 '최적' 조건을 갖췄지만, 두 가지 모두가 '최적' 조건을 갖춘 곳은 전체 조사지역의 20%에 불과했다.

알 낳고 4개월 안에, 날기 전에 잡아야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동부 아프리카는 40년만에 나타난 최악의 사막메뚜기떼 창궐로 몸살을 앓았다. 케냐에서는 70년만에 나타난 대규모 발생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조금씩 늘어나 2020년 초 본격적으로 창궐한 사막메뚜기 떼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여름 UN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사막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가 수십년만의 최고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아프리카 북동부와 서아시아 일대 식량 안보가 ‘위기’ 상황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막메뚜기를 줄이기 위한 농약, 혹은 물리적인 박멸은 알이 부화하기 전, 혹은 날개가 발달하기 전 뛰어다닐 수만 있는 ‘호퍼(hopper)' 상태일 때 효과적이다. 메뚜기 암컷은 지표면 10~15㎝ 아래, 따뜻하고 습한 모래점토에 알을 낳는다. 약 2~4개월이 지나면 메뚜기가 성숙하고 날개가 발달하기 때문에, 알을 낳은 시기부터 2~4개월 안에 박멸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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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메뚜기 발생 조건을 파악해, 호퍼 상태의 메뚜기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토양의 질감, 수분, 온도 등 흙의 상태가 사막메뚜기의 번식과 알 부화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엘렌버그 박사는 "메뚜기의 생애주기와 지역의 기온을 알면 메뚜기가 부화하는시기와 토양 상태를 역 추적하고, 최적의 번식 조건을 감지할 수 있다"며 "최대 9 주 전에 메뚜기 떼가 나타날 위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ASA SERVIR는 현재 사용 중인 FAO의 메뚜기 관측 자료에 토양 상태 정보를 포함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SERVIR의 식품안보연구원인 나칼렘베는 "최적의 번식기를 확인하면 메뚜기 알과 호퍼를 제거할 수 있다"며 "2년 뒤에 대규모 메뚜기떼가 발생할 때에는 이런 자료를 샅샅이 뒤지지 않고, 미리 위성 데이터와 관측정보로 조기에 경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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