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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코드 인사인데 여성으로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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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임혜숙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임혜숙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후보자’란 꼬리표가 떨어졌지만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관해 쓰기로 한 건 12시간20분간 인사청문회의 씁쓸한 뒷맛 때문이다. 도덕성 논란은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그는 의원들(주로 여당)의 정책 질의에 “동의한다”를 연발했다. 26번까지 세다 지쳤다. 소신은 알기 어려웠다. 그나마 논쟁한 건 탈원전을 두고서였다. 임 장관이 “원전의 위험에 대한 어떤 정책”이라고 표현하자 금오공대 총장 출신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반박하면서다.

역량 논란 임혜숙 장관 임명에 #과학계, “대통령 과학 인식 제로 #30% 여성쿼터 분야로 전락했다”

 ▶김 의원=“위험에 대한 정책이다? 과학자 맞나.”
 ▶임 장관=“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로는 위험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 방향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김 의원=“우리 원전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그리 생각 안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비과학자, 미신 같은 형태로 말하는 거다. 영화 한 편 보고 탈원전을 추진한 배경과 같다는 이야기다.”

 임 장관은 “장관으로서 역량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저를 믿고 장관 후보자로 지명해 주신 분의 뜻을 따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게 장관 역량인가.

 그런데도 임 장관의 부상은 급격했다. 문 대통령의 “성공한 여성들을 통해 보는 로망, 또는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발언에서 드러나듯, 여성 공학자 발탁 케이스였을 것이다. 공교롭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임 장관의 대외 활동이 늘어났다. 2017년 11월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가 기획한 『공학하는 여자들』에 소개된 공학자 5인 중 한 명이었다. 임 장관은 여기서 “앞으론 논문보다는 다른 형태로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다”고 했다.

 1년여 만에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지난해 말엔 여성과총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으로 그를 추천했다. 25개 정부출연연구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곳인데, 임 장관은 유사 업무를 맡아본 적도, 또 널리 알려진 인물도 아니었다. 반발이 심했지만 그래도 됐다.

 요란하게 취임한 것에 비하면 너무 일찍 떠났다. 87일 만이었다. 그래도 장관 추천 사유에 87일 경력이 포함됐다. 코미디였다. 임 장관은 청문회에서 “임기를 마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지만 인사권자의 의견을 듣고 나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여성 과학자들을 기용해왔다. 여성으로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외려 난감하다. 대개 논란 있는 이들이어서다. 2016년 “여성과학자들과 함께 과학입국의 미래를 개척할 최적의 인재”라고 영입한 문미옥 포항공대 물리학 박사는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을 거쳐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과기부 차관, 그리고 이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으로 영전에 영전을 거듭했다. 정작 과학계에선 “문재인 정부 과기정책을 표류하게 한 주범 중 한 사람”이란 비판이 커졌다. 과기부의 초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발탁됐던 황우석 사태의 당사자였던 박기영 순천대 교수나 최근의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도 논쟁적 인물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 시급한 건 리더십인데 대통령을 비롯해 586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제로다. 그래서 30% 여성쿼터를 채우는 분야로 전락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이화여대 교수는 “코드 인사인데 여성으로 가렸을 뿐”이라고 냉소했다. 달리 반박하기도 어렵다.

 임 장관은 잊었을 수 있겠지만, 대한전자공학회 명예회장들이 자신을 부회장으로 임명하자고 했다가 중단한 걸 두고 섭섭함을 느끼다가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책에 털어놓았다.

 “다행스럽다. 아무리 여성이 극소수라도 경험을 쌓고 단계를 밟아 부회장으로 선출되는 게 그냥 임명되는 것보다 떳떳함과 자부심에서 차이가 크다. 여성이란 이유로 지명된 게 아니라 선거로 선출돼 부회장으로 일하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책임 있는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