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K의 기원

중앙일보

입력 2021.05.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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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한국은 백신 불모지였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녹십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백신 대량 생산에 나선 건 2009년 신종플루 무렵이다. 신종플루 전까지 국내 백신 산업은 원액을 수입해 소분한 다음 유통하는 데 그쳤다. 백신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건 아픈 기억 때문이다. 신종플루 대유행으로 세계적인 백신 부족 현상이 이어지자 한국 정부는 다국적 제약사를 찾아다니면 백신을 공급해달라고 읍소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백신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늘렸고 신종플루를 이겨냈다.

백신 자급률을 끌어올린 건 박근혜 정부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데인 박근혜 정부는 2017년 백신 자급률을 50%로 높이는 정책을 마련했다. 녹십자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바이오 기업이 백신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는 K 방역은 이렇게 축적된 경험과 기술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K 수소도 미래를 내다본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소 경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한 건 노무현 정부가 처음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05년 발표한 친환경 수소 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이 그것이다. 연료전지산업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비전이란 부제가 붙은 수소 경제 마스터플랜은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환경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며 “연료전지 등 각종 수소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셰일가스 성장과 기술력 한계로 수소 경제 마스터플랜은 실행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지만, 국가 에너지 정책 한편을 채운 마스터플랜이 없었다면 K 수소 경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가 지난 13일 K 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510조원에 이르는 미래 투자 대부분은 민간 기업이 맡는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돈이 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에 민간이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 백신과 수소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간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야를 선점해 투자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발표한 5대 국정 과제는 다음과 같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다. 추상적이다. 4년차에도 미래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밥 짓는 게 어렵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는 건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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