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검은 속옷, '똥머리' 금지…학교 복장 규정, 2021년 맞나요

중앙일보

입력

2018년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서울 동작구의 A중학교는 학생의 머리가 어깨에 닿으면 반드시 묶게 한다. 학교 밖으로 체험학습을 갈 때도 트레이닝복은 입을 수 없다. 교사들은 학생의 속바지가 사복인지 확인하기 위해 치마를 걷어 검사한다. 이 학교는 머리끈부터 양말·가방의 색까지 단색으로 제한하고 있다.

학생들이 청소년인권단체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에 제보한 학교 복장 규제 사례다. 학교 내 자유로운 옷차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많은 학교가 복장 제한을 줄였지만, 일부 학교엔 여전히 과도한 규정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학생 속옷 색깔·무늬 제한하는 학교

지난 3월 20일 오전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실 입구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3월 20일 오전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실 입구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서울 B여고 재학생과 아수나로 활동가들은 서울교육청에 두발·복장 규제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학교서 체육복을 입지 못하게 하거나, 스타킹의 색을 제한하는 등 과도한 복장 규제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아수나로 측은 집회에 앞서 학생들에게 받은 제보를 공개했다. 제보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의 C고는 겨울에도 조끼 등 외투 입는 걸 금지한다. 윗옷 안에 다른 옷을 입을 수도 없다. D고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학교가 이른바 '똥머리'(머리를 묶어서 위로 올리는 형태)를 못하게 한다고 밝혔다.

여학생의 속옷을 규제하는 학칙도 있다.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여중 44개교 중 9곳, 여고 85개교 중 22곳이 속옷의 색이나 무늬를 제한하고 있다. 관악구 C고는 여학생은 누드톤이나 파스텔톤의 속옷만 입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복장·두발, 학칙으로 제한' 조례 없앴지만…

지난 4월 18일 서울 A여고 재학생 B양이 서울시교육청 학생 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글. 복장 제한 학칙의 근거 규정을 삭제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복장 규제가 남아있다며 감독을 촉구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 청원 캡쳐]

지난 4월 18일 서울 A여고 재학생 B양이 서울시교육청 학생 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글. 복장 제한 학칙의 근거 규정을 삭제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복장 규제가 남아있다며 감독을 촉구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 청원 캡쳐]

학생들은 일부 학교의 복장·두발 제한 학칙이 상위 법령인 조례에도 어긋난다고 말한다. 지난 3월 10일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중 '학생의 복장을 학교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학칙으로 복장을 제한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1인 시위에 나선 B여고 학생은 지난달 8일 서울교육청 학생 청원에 글을 올려 시교육청의감독을 촉구했다. 그는 청원 글에서 지난 3월 조례 개정안이 통과된 사실을 언급하며 "아직도 학교들은 어떤 움직임(학칙 개정)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현상이 계속되는 이유는 대부분 학교가 학생인권조례를 의식하지 않고, 어떤 압박도 받지 않기 때문"이라며 "서울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용의(복장) 규정을 인권조례에 따라 규정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서울교육청 "학운위에 학생 참여"…교원단체 "학생지도 어려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 두 번째)과 서울학생참여위원회 위원, 학생 대표들이 10일 오후 국회를 방문, 유기홍 교육위원회 위원장(가운데)에게 '학생운영위원회 학생 참여 법제화'가 담긴 '초-중등 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 두 번째)과 서울학생참여위원회 위원, 학생 대표들이 10일 오후 국회를 방문, 유기홍 교육위원회 위원장(가운데)에게 '학생운영위원회 학생 참여 법제화'가 담긴 '초-중등 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교육청은 한발 더 나아가 학칙 등을 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을 참여하게 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서울 723개 중·고교 대표로 이뤄진 학생참여위원회 대표 2명은 지난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이런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 요구안'을 전달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학생 생활지도를 위해 일부 복장·두발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2019년 초·중·고 교원 787명을 대상으로 복장·두발 규제를 폐지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82.7%가 반대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지나친 복장 제한은 완화해야겠지만, 모든 복장 관련 학칙을 폐지하는 건 학생 지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교육청이 나서기보다는 각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규칙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