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복지 정책이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15 12:00

업데이트 2021.05.16 14:57

복지 정책이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얼핏 들으면 모순(矛盾)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 정책은 아무리 최저계층이라도 인간다운 의식주를 꾸릴 수 있도록 사회에서 보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여년 간 복지 정책을 연구해 온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한국의 복지 정책은 '부익부 빈익빈'을 완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복지국가 재편의 두 가지 길: 영국과 스웨덴의 경험'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노동기구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거치며 복지국가를 연구한 전문가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최근 신간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낸 김 교수를 1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저자 인터뷰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사진 김영순 교수]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사진 김영순 교수]

-복지 정책이 불평등을 강화하는 도구로 쓰인다고?
=복지라는 게 저소득 노동자에게 더 필요한데 오히려 이런 제도에 잘 가입된 건 직장도 튼튼한 사람들이다. 국민연금의 가입률을 생각해보라. 정규직은 100%인데 비정규직은 50%도 안 된다. 복지가 기본적으로는 불평등을 완화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복지를 하면서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다. 서구 국가와 비교했을 때 '한국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기업에 가면 사장도 노동자도 당장은 보험료를 내기 싫으니까 서로 합의해서 연금이나 고용보험 등에서 가입을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한국은 노동운동이 기업별로 발달하면서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 등 기업 내 분배 투쟁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재분배에 대해선 논의가 소홀해진 측면도 있다.

-네덜란드는 한국보다 노동 유연성이 강해서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은데?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아무리 작은 사업장에서 시간제 노동을 해도 고용주는 국세청에 신고하고, 임금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사회보험료로 납부하게 된다. 일종의 세금 같은 개념이다. 네덜란드에서 노동을 하게 되면 강제 가입해야 하고 실업하거나 퇴직하면 일정액을 받는다. 또 다양한 보충 급여 제도도 있어 소득이 낮아 적게 낸 경우도 일정 금액 이상을 받는다. 복지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렇게 제도적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국가가 최대한 가입을 시킨다. 한국은 최근 '라이더'라든지 플랫폼 노동이 많아지고 노동의 유연화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왔다. '배달의 민족'처럼 고용주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형태의 노동이 많아졌는데, 이 사람들은 과거의 제도로는 끌어들 일 수가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같은 방식을 고려해봐야 한다.

김영순 교수는 "최근 급증한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은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들을 어떻게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일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1]

김영순 교수는 "최근 급증한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은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들을 어떻게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일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1]

-이 책에서는 한국 복지 정책의 특징 중 하나로 대통령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꼽았다.
=대통령이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복지정책은 정당 안에서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대선 후보자 캠프에서 급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급조되다 보니 경제정책과 조세정책, 복지정책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또 집권 후에 바로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 어렵고 오랜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복지정책이 정책성 합리성보다 정치적 필요성에 좌우되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복지정책이 선거경쟁 과정에서 무리하게 확대된 경우도 있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보육이 화두로 떠오르자 새누리당과 이명박정부는 0-2세 무상보육을 도입했다. 시설보육의 필요성이 더 큰 3-4세 아동 보다 0-2세 아동의 무상보육이 먼저 도입되었다. 예산증액은 최소화하되 무상보육 확대라는 생색은 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무상보육이 갑자기 확대되자 '안 맡기면 나만 손해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전업주부들도 아이를 시설에 맡겼다. 시설에서는 그런 엄마들은 금방 (아이를) 찾아가니까 종일 맡기는 것보다 좋아 취업맘에 대한 '역차별'이 일어났다. 이어 3~4세 부모들은 '왜 우리는 배제하냐'고 항의해서 3~4세도 해주고…  2012년 대선국면에서는 모든 후보가 0-5세 무상보육을 약속했다.  복지 전문가들도 놀랄 만큼 파격적이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소득에 따라 소액의 보육료를 내는 등 완전 무상은 아니며, 부모가 모두 취업해 있지 않으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도 제한한다.  한국은 정치 경쟁을 하면서 만들다 보니 진지한 고민 없이 과도한 정책을 쓴 것이다.

-전반적으로 복지 정책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나 이해도가 부족한 게 아닌가
=서구의 경우 복지 정책은 여러 사회 세력의 갈등과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다. 거기서 복지 정책이 논의되던 시기는 제조업의 호황기였고, 노동자들의 파워가 셌다. 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의회에 진출한 좌파 정당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전 사회적으로 복지 정책의 적용에 대해 토의하고 타협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한계로 좌파 정당이 출현하기 어려웠고, 복지 정책은 주로 보수 정당이나 중도 정당에서 나온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토론하거나 타협하며 섬세하게 틀을 짜기 어려웠다. 시기적으로도 조금 아쉬웠다.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기본법 제정이나 국민연금 개혁 등 중요한 골격들이 마련됐는데, 이때는 이미 제조업이 전성기가 지나고, IMF 사태와 신자유주의 도입되는 등 노동자 세력이 위축되던 때였다.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노동 계층의 권익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신간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사진 학고재]

신간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사진 학고재]

-한국은 복지 후진국인가?
=한국 복지국가의 결함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들이 있었다. 나도 대부분 동의하며 책에도 썼다. 그러나 1990년 3.1%였던 GDP 대비 복지지출은 2019년 12.2%까지 꾸준히 늘어났다. 물론 한국의 복지 수준은 경제 발전 수준에 비해 낮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이 빠르게 복지정책이 팽창한 나라다. 흔히 양적 성장은 폄하하고 질적 결함을 문제 삼으냐 양적 성장 자체도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보수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복지 확대 기조를 늦춘 적이 없다. 상대방의 정책을 크게 뒤집지도 않았다. 이런 연속성은 평가해줄 수 있다고 본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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