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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선 장애 별게 아니다…입사 3년만에 부점장된 예나씨

중앙일보

입력

최예나 부점장. 그의 앞치마 오른쪽에는 '청각장애 바리스타'라고 적혀있는 노란색 뱃지가 달려있다. 스타벅스 제공

최예나 부점장. 그의 앞치마 오른쪽에는 '청각장애 바리스타'라고 적혀있는 노란색 뱃지가 달려있다. 스타벅스 제공

"장애가 있어 고객과 소통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힘찬 포부의 주인공은 스타벅스 서울대치과병원점 최예나 부점장(29)이다. 청각장애 2급인 최 부점장은 스타벅스 장애인 공개채용 면접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포부는 현실이 됐다. 입사 3년 만에 부점장으로 승진한 그를 지난달 1일 만났다.

"모두의 배려 덕에 소통 문제없어"

"안녕하세요, 스타벅스입니다." 매장에 손님이 들어오자 최 부점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님은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랑요"라고 말하며 주문을 시작했다. 그러자 최 부점장은 "저는 청각장애 바리스타라서 여기에 메뉴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손님에게 주문 내역을 적을 수 있는 필담(筆談) 노트를 내밀었다.

지난달 1일, 최예나 부점장이 주문을 받고 있는 모습. 손님은 매장 이용에 익숙한 듯 필담패드에 주문 내역을 적고 있다. 양대면 카드단말기로 손님은 주문 즉시 내역을 볼 수 있고, 단말기 옆에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근무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놓여있다. 정희윤 기자

지난달 1일, 최예나 부점장이 주문을 받고 있는 모습. 손님은 매장 이용에 익숙한 듯 필담패드에 주문 내역을 적고 있다. 양대면 카드단말기로 손님은 주문 즉시 내역을 볼 수 있고, 단말기 옆에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근무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놓여있다. 정희윤 기자

양쪽으로 화면이 설치돼있는 양대면 카드단말기도 최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손님이 단말기 화면으로 자신이 주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손님이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어? 따뜻한 거 아닌데요"라고 말하자 최 부점장은 바로 "아이스로 바꿔드릴까요?"라고 답했다. 그의 눈은 손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한 마스크 착용 때문에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손님의 몸짓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최 부점장은 "소통이 이전에 비해서 어렵긴 하지만, 지금은 필담 노트와 양대면 카드단말기가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의 배려도 최씨에겐 큰 힘이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가 막 시작됐을 때 파트너들과의 소통도 힘들었는데, 한 명이 '엘레나(최 부점장의 닉네임)한테 말할 땐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말해주자'고 했다"며 "그때부터 파트너들이 저와 얘기할 때는 마스크를 내리고 말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마스크를 내리는 대신 음성문자변환기나 필담 노트로 소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매장의 단골손님도 눈에 띄었다. 김준호(30)씨는 주문대 앞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필담 노트에 자신이 주문할 음료를 적었다. 김씨는 "이 지점을 자주 이용한다"며 "문 앞에 청각장애 바리스타가 있다는 안내문이 있길래 그 후로 필담 노트를 잘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리스타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다른 매장하고 큰 차이를 못 느낀다"고 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자신감 얻고 스타벅스 부점장까지

최 부점장은 6살 때 장애를 알게 됐다고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소음성 난청이었다. 이후 진로를 생각할 때마다 장애라는 벽에 부딪혔다. 그러다 지인 소개로 카페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는 "좋은 사장님을 만나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며 "당시 사장님이 업계 최고인 스타벅스에서 6개월만 근무해보면 어떻겠다고 권유했다. 배우고 돌아오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며 웃었다. 사장님의 권유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지난 2015년 스타벅스 장애인 공개채용에 지원해 합격했다.

입사 3년만인 2018년, 그는 부점장 자리에 올랐다. 최 부점장은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고,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부점장 자리에 지원도 안 했다"며 "하지만 한계 없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 도전이 장애인 파트너들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좋은 자극이 되길 바라서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부점장의 목표는 매장 최고 관리자인 '점장'이다. 그는 "'장애인도 잘할 수 있구나, 점장이 돼서도 이렇게 잘하는구나'를 꼭 보여주고 싶다"며 "특히 지금 근무 중인 지점처럼 지역사회에 특별한 가치를 전달하는 매장에서 근무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과의 상생을 위한 공간

스타벅스 서울대치과병원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파트너를 위해 타 지점보다 음료 제조 공간이 약 2배 넓고 제조대의 높이는 타 지점보다 낮다. 곳곳에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근무 중이라는 안내문이 놓여있다. 정희윤 기자

스타벅스 서울대치과병원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파트너를 위해 타 지점보다 음료 제조 공간이 약 2배 넓고 제조대의 높이는 타 지점보다 낮다. 곳곳에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근무 중이라는 안내문이 놓여있다. 정희윤 기자

최씨가 일하는 매장은 지난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개점했다. 서울대 장애인치과병원 지하에 있는 이곳은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 가운데 처음으로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라고 한다. 점자 안내판과 필담 기기가 배치돼있고 문턱도 없앴다. 휠체어를 탄 파트너를 위해 음료 제조 공간은 타 지점보다 2배 이상 넓고, 제조대의 높이는 낮췄다. 매장 수익의 일부는 희귀 난치성 저소득층 아동의 치과 수술비로 사용될 예정이다.

유치에 앞장선 구영 서울대 치대 병원장은 "전문 의료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윤리 교육 등이 기본 의학 전문과정에서 더 강조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데, 이 장애인치과병원 자체가 학생들에게 산 교육의 장"이라며 "스타벅스 유치도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병원이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 불편하게 대기하는 것보다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유치하고 싶었다"며 "우리 사회 전반에 장애 인권과 자유가 차별받지 않고 고용에 있어 평등을 보장받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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