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17세기 중국을 어떻게 파고들었나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15 00:21

업데이트 2021.05.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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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20면

칠극(七克)

칠극(七克)

칠극(七克)
판토하 지음
정민 옮김
김영사

스페인 선교사 한문 수양서
교리보다 인간 덕성 앞세워

“유교의 극기 주장과 비슷”
조선 유학자도 긍정 평가

이 책은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Diego de Pantoja, 1571~1618)가 1614년에 중국 북경에서 한문으로 출간한 ‘천주교 수양서’다. ‘수양서’라 함은 천주교 교리 내용만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다. 기독교 ‘성경’과 서양 중세 신학자들의 얘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런 천주교 교리에 앞서 우선 인간의 보편적인 덕성을 앞세운 점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 은근히 가톨릭을 전파하고 있다. 400여 년 전에 선보인 고도의 ‘선교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한편으론 400년 전에 진행된 동서양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판토하의 활동 시기는 명나라 말기다. 함께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에 비해 판토하는 일반 대중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진 않다. 마테오 리치 타계 후 그의 작업을 판토하가 이어받았다. 마테오 리치의 대표작 『천주실의』와 함께 판토하의 『칠극』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서학(西學) 종교서’로 꼽힌다.

“사람의 마음에 생기는 병은 일곱 가지가 있다. 마음을 치료하는 약 또한 일곱 가지가 있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문장이다. 일곱 가지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처방을 담고 있다고 해서 제목이 ‘칠극(七克)’이다. 마음의 병 가운데 으뜸은 교만함이다. 교만을 겸손으로 극복하라고 했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 학자 서광계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미술작품. 한문으로 된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쓴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는 마테오 리치의 뒤를 이었다. 마테오 리치를 만난 후 서광계는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사진 로열뮤지엄그리니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 학자 서광계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미술작품. 한문으로 된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쓴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는 마테오 리치의 뒤를 이었다. 마테오 리치를 만난 후 서광계는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사진 로열뮤지엄그리니치]

이런 내용을 천주교의 전유물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왜 이런 말을 앞세웠을까. 동양 전통의 유교와 불교와 도교 등에서 많이 강조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좋으니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할 현지의 사람들이 잘 아는 어휘와 윤리를 먼저 제시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일곱 가지 마음의 병에 대해선 서양 중세 신학계에서도 얘기해온 것들인데, 그 처방을 유가(儒家)의 언어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교만·질투·탐욕·분노·식탐·음란·나태 등이 마음의 병이고, 겸손·인애·관용·인내·절제·정결·근면 등이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처방으로 제시된다. 제목에 사용한 ‘극’자는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연상시킨다. 첫 출간 때 명나라 지식인들의 느낌이 실제 그러했다고 한다. 마테오 리치는 동아시아에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현지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판토하 역시 그 방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번역자 정민 한양대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관련 사실을 들여다보다가, 뜻밖에 이 책이 조선조 지식인들에게도 널리 읽혔고, 그 영향과 파급력이 상당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에 유입된 『칠극』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남긴 것은 성호 이익(1681~1763)이 처음이다. 그는 『성호사설』의 ‘칠극’ 항목에 이렇게 썼다. “칠극은 … 바로 우리 유가(儒家)의 극기(克己)의 주장이다. … 예(禮)로 돌아가는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다. 다만 천주와 귀신에 대한 주장을 섞은 것은 해괴하다. 만약 모래와 자갈을 체질하고 고명한 논의만 가려 뽑는다면 바로 유가의 부류일 것이다.”

성호의 평가가 핵심을 찌르고 있다. 유가의 윤리 도덕과 별다를 바가 없다고 긍정하면서 동시에 ‘천주’ 관련 내용이 섞여 있는 것을 해괴하다고 비판했다. 비판을 하긴 했지만 긍정적 평가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성호 문하에서 한국 천주교의 초석을 놓는 제자들이 잇따라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들의 독서 목록엔 『칠극』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읽어온 『칠극』의 다양한 한글 번역 필사본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다른 번역서도 여러 종 나와 있다.

판토하는 인생의 온갖 일은 “소구적신(消舊積新)”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묵은 악업을 없애고 새로 덕업을 쌓는다”는 의미다. 교만을 가장 경계하고 겸손을 강조하면서 써놓은 다음의 말도 기억해둘 만하다. “교만이 마음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마침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고, 정의롭고 공평한 의리는 갑자기 다 없어지고 많다.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비록 훌륭해도 반드시 싫어하고, 오직 자기가 한 것만은 아무리 작아도 스스로 기뻐한다.” 400년 전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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